Category: 발도르프학교

발도르프학교 1학년 K의 하루 나기

교실 한켠에 촛대를 마련합니다. 그 주변에 원을 그리며 의자를 놓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의자에 앉고 서로를 살핍니다. 오늘은 누가 촛불에 불을 붙이게 될까. 모두가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지만 선생님은 의기소침하거나 혹은 기운이 넘치는 아이를 고릅니다. 촛불과 함께 아이들의 눈과 마음이 환하게 열립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하나되어 아침을 여는 시를 낭송합니다.

Morning has come ~

Night is Away ~

Rise with the sun and welcome the day ~ ♪

첫 시간은 에포크 수업입니다. 정해진 수업시간은 40분이나 에포크수업은 100분간 진행이 됩니다. 정신이 가장 맑은 시간이라 1학년 아이들이지만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요즘 K가 에포크수업시간에 배우는 것은 ‘ㄷ’, ‘ㄹ’, ‘ㅁ’, ‘ㅂ’, ‘ㅍ’ 과 같은 한글 자음과 숫자입니다.

에포크 수업시간이 끝나면 25분간의 쉬는 시간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싸주신 과일, 채소, 견과류로 간식시간을 갖습니다. 밖으로 나가 뛰어놀고 싶은 마음에 간식먹는 시간이 매우 바쁩니다. 간식을 먹고 나면 자유시간. 운동장과 산을 오가며 놀기에 10여분의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두번째 시간은 외국어나 수공예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서는 중국어와 영어를 배웁니다. 상급학년에서는 일본어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외국어를 모국어와 동일한 방식으로 습득하도록 도웁니다. 선생님은 우리말을 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에 선생님의 눈짓, 손짓, 몸짓에 더 집중합니다. 1학년 학생들에게 외국어 수업은 놀이에 더 가깝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놀며 노래부르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마지막 시간은 미술, 음악과 같은 예술수업입니다. 1학년 미술시간에는 습식수채화를 배웁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색깔이 주는 느낌대로 아이들은 반응합니다. K는 이 수업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늘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K는 습식수채화 수업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집중을 백개는 해야 해.”

지난 주 5음계 리코더를 받았습니다. 3학년 형, 누나들이 사용하던 리코더를 물려 받았습니다. 3학년은 7음계 리코더로 배우게 됩니다. K는 리코더에 대해 많은 애착을 보입니다. 학교에서 쓰는 것, 집에서 쓰는 것, 두개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리코더를 배우고 난 이후에도 그 마음 변치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수업이 끝나고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식사전후 꼭 감사기도를 합니다.

“땅은 곡식을 자라게 하고
해는 그것을 익게 하니
사랑하는 햇님 사랑하는 땅님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점심을 먹고 자유시간. 자유시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거나 방과후 놀이활동에 참여합니다. 1학년 학생들은 가능하면 집에서 쉬게 할 것을 권장합니다. 8살 아이들에게는 집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엄마의 애정을 느끼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8시 30분, 밤이 찾아오면 K는 잠자리에 듭니다.

아침을 여는 시

– 루돌프 슈타이너 –

해에서 나오는 사랑의 빛이

나에게 하루를 밝혀 줍니다.

영혼에 들어있는 신의 힘이

내 팔다리에 힘을 줍니다.

빛나는 햇빛 속에 있는 신이여.

당신을 우러러봅니다.

당신이 내 영혼에

자비롭게 심어준

사람의 힘으로

나는 잘 배울 수 있고

또 많은 것을 알고자 합니다.

당신한테서 빛과 힘이 나왔고

당신한테로 사랑과 감사가 흘러갑니다.

푸른숲발도르프학교 학년별 시간표

한국에도 발도르프학교가 있다

발도르프학교는 전세계적으로 1000여개가 있습니다. 발도르프유치원은 그보다 많은 2000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의 발도르프학교가 1919년 독일에서 개교하였으니 그 역사가 9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발도르프학교는 10여년 전부터  대안교육으로 출발하였고, 올해 서울, 인천 두곳에 새롭게 학교를 개교하였습니다. 이로써 한국의 발도르프학교는 8곳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발도르프교육을 표방하는 최초의 공립학교가 탄생하였습니다.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공현진 초등학교가 그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도르프 교육이 한때의 유행에 그칠지 아니면 100년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함께 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 교육의 정상화가 더딘 만큼 그 역사도 오래 갈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한국의 발도르프학교가 있는 곳을 소개합니다.

2012년 4월,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가 새롭게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도에 추가하였습니다.

서울에 새로이 개교한 자유정릉발도르프학교, 광주에 문을 연 무등자유발드로프학교를 지도에 추가하였습니다.

나는 왜 발도르프학교를 택했을까

20120314-213950.jpg

푸른숲발도르프학교 목공실에서

우리나라에서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자식에게 일체의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공교육에 비해 높은 학비는 제쳐두고서라도 주변의 편견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편견이라는 것은 진실된 모습이 아닌 제3자가 바라본 왜곡된 상일 것이니 개의치 않아도 좋으리라. 남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시시콜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 관한 것이다. 내가 아이의 앞날을 언제까지 염려해 주어야 할까. 내가 예측하는 앞날이 과연 현실이 될까. 내가 성인이 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해 준들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성인이 되기까지 기본적인 인성과 지식을 갖추게 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추게 한다면 더이상 걱정할 것은 없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현재의 행복을 위해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많은 대안학교 중에서 발도르프학교를 선택하게 된 이유들을 정리해 본다. 10년이 지난 뒤에 나의 생각과 기대치는 어디에 머물러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일상의 톱니바퀴 속에서 허우적댈 때 나의 첫 마음가짐을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

  1.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시키지 않겠다.
  2. 끝없는 경쟁으로 치닫는 지금의 공교육, 인간을 재화로 바라보는 공교육을 반대한다.
  3. ‘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인간이 가진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곧 교육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라는 발도르프 교육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4. 자연을 가까이 하고 인간도 그 일부임을 배웠으면 한다.
  5. 인간의 삶이 충분히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6.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스스로 갈길을 모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7. 대학 진학이 인생의 필수 관문이라 생각치 않는다.
  8. 교육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끝없는 상호작용과 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도 그 과정의 중요한 주체이기에 적극적으로 교육에 동참해야 한다.
  9. 대안적인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학교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10.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살고 싶지 않다.
  11. 그리고…

그 꿈으로 날아가리

어린 아이들은 부모와 같은 절대적인 권위안에서 충분히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철학입니다. 또한 아이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실현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발도르프학교에는 8학년 담임과정이 있습니다. 이는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모에게 조차 힘든 그 과정이 선생님에게는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요? 8년을 함께 보낸 선생님이라면 부모와 다를 바가 있을까요?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는 올해 8학년 과정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의 품을 떠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9학년 상급과정으로 진급하게 됩니다.

아이들과 8년을 함께 보낸 담임 선생님은 지난 시간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셨습니다.

“앞니빠진 철부지가 사춘기 청년이 될 때까지 한 담임과 함께 하다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웃음과 울음과 애닳음과 애씀….

실수, 반성, 후회, 기쁨, 행복, 그리고 성장을 겪는지요.”

<2012년 2월의 어느날>

그리고 8년을 함께 살아 온 한 제자는 담임 선생님을 위해 이 시를 받쳤습니다.

20120307-105715.jpg

푸른숲발도르프학교 8학년 김중신

                    날아가리
                                                                       – 김중신 –

날아가리
지금까지
‘지금까지’라고 말하기 바로 전 순간까지는 꿈이었던

꿈이었던
지금,

‘지금’이라고 말하는 이 순간
그 꿈이 새가 되어

그 꿈이 새가 되어
지금부터,

‘지금부터’라 말하는 이 순간부터
바로 그 꿈으로 날아가리

바로 그 꿈으로 날아가리
지금부터

교육을 예술처럼, 만남도 예술처럼

지금껏 나에게는 4번의 입학식이 있었으나 단 한번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한 순간도 말이다. 6년, 3년, 또 3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입학식의 모습은 매번 비슷했다. 군대 사열식처럼 학생들을 줄을 세워놓고 지루한 행사가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의 입장에 앞서 예행연습까지 해야하니 시간은 몇배로 더디게 가는 듯 했다.

3월 2일, K가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 입학했다.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입학식은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인데 이학교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것이 사실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레임 탓에 아침 일찍 잠을 깨고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학교로 가기위해 45번 국도에 올랐다. 45번 국도는 한강과 함께 흐르는 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곳을 지날 일이 있다면 멋진 경관에 한눈 팔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길은 대형 트럭들과 사이클 동호인들이 자주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학교 앞에 있는 너른골생협 원당리 구판장에 모여 함께 학교로 향할 예정이었다. 구판장은 막 개장하여 시골 구멍가게보다 진열된 상품이 적었다. 썰렁한 공간을 화목난로와 1학년 학부모들의 온기가 채우고 있었다.

10시를 넘기자 부모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길 옆에 들어선 멋진 집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학부모들의 집이다. 학교가 이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토지를 매입하고 정착한 고마운 부모들이라 했다. K는 오르막길을 달음질 치다 주춤하고 뒤를 돌아본다. 매번 자동차로 올랐던 길이라 생소한 모양이었다.

저멀리 학교가 보이는데 그제서야 학생들이 모이고 현수막을 치기 바쁘다. 우리가 너무 빨리 온 것이다. ‘지곤조기’를 뜻하는 수신호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어린 학생들은 계단을 채우고 그 보다 큰 학생들은 길 양쪽을 에워쌌다. 미숙하지만 인간적인 이런 풍경이 밉지 않다. ‘환영합니다’라고 쓰여진 현수막엔 새싹과 산,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4학년 학생들의 작품이라 했다.

드디어 준비가 되었나 보다. 이제 올라오라 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환영하는 노래를 합창했다. 큰 학생들은 리코더로 연주를 해주었다. 신입생들을 계단의 앞쪽에 앉히고 재학생들이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한 선생님의 환영인사와 함께 다른 선생님들이 신입생들 앞에 섰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환영의 뜻으로 노래를 선사했다. 뻐꾸기에 관한 노래였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국에서 오신 선생님도 가장자리에 서서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셨다. 우리말을 거의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셨을까. 어떤 말보다 감동적인 환영인사였다.

재학생들이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입학식이 진행될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K는 동기들과 함께 선생님을 따라 다른 곳으로 갔다. 동생 J는 오빠와 헤어지기 싫다며 울음을 쏟아냈다. 이후로도 J의 난처한 돌발행동은 계속 되었다.

강당으로 들어서자 중앙에는 신입생들을 맞이할 색색의 방석이 원형으로 깔려 있었다. 그 주변을 2학년, 3학년 학생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앉았다. 8학년 학생들은 한켠에서 축하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드디어 새로 온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 보다. 리코더 합주가 시작되고 주인공들이 하나 둘씩 입장했다. 예상하지 못했을 낯선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며 자리를 채운다.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중앙에 놓인 촛불을 켰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8년간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 무게를 선생님은 어찌 받아들였을지 궁금해졌다.

새로 입학하는 동생을 둔 재학생 둘이 동생을 위한 편지를 낭독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신입생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재학생이 그 학생에게 화관을 씌워주고 담임 선생님에게로 인도했다. 선생님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것 처럼 꼭 껴안아 주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포옹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저토록 진하게 껴안아 준 적이 있었던가. 나에겐 어색하기만 한 몸짓이다. 부끄러운 사실이다.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인형극이 그 뒤를 이었다. J는 무척이나 궁금했나 보다. ‘안보여! 안보여!’를 외치며 무대의 앞으로 앞으로 파고 들었다. 결국엔 주인공들의 대열에서 인형극을 관람했다. 인형극은 천사가 날개를 떼어 놓고 이땅으로 내려와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세상 여행이 끝나는 그날 다시 날개를 달고 하늘나라의 천사가 되겠지.

공연이 끝나고 학부모들은 1학년 교실로 옮겨 아이들을 맞이하기로 했다. 한달 만에 찾은 교실의 풍경은 이전보다 포근하고 따사로웠다. 계절 책상, 인형, 그림, 조명, 아이들의 쉼터가 될 작은 천막, 곳곳에서 선생님과 어머님들의 애정이 묻어났다. 신입생들은 자기 이름이 붙은 자리에 앉았다. 책상위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필통이 고운 포장지에 싸여 있고 책상 서랍안에는 선생님이 준비하신 선물이 있었다.

푸른숲발도르프학교 아이들에게 입학식은 어떤 순간으로 기억될까. 기억이 오래가진 않겠지만,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애정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즐겁고 기분좋았던 순간으로 기억해 주리라 믿는다.

발도르프학교에서 교육은 예술과 같아야 한다고 한다. 교육이 선생님과 학생의 만남, 선생님과 부모의 만남, 선배와 후배의 만남이라 한다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예술과 같아야 할 것이다. 벤자민 체리 선생님의 말처럼 말이다.

[1학년 교실의 계절 책상, 2012]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 입학합니다

큰 아이 K가 안양공동육아어린이집 ‘친구야놀자’를 졸업하고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 입학합니다. 발도르프학교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입학하고 성장해 가는 학교랍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의 학교생활을 이 블로그에 담으려고 합니다. 같은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벤자민 체리 선생님

푸른숲발도르프학교, 벤자민 체리, 최호철 화백

이미지 출처: nicos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