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지마, 밀지마! 천천히, 천천히!

2013-10-12 12.24.13

   K는 이제 글을 웬만큼 쓰고 읽을 줄 안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를 지나는 지금에서야 말이다. 지난 1년은 자음과 모음을 공부했고, 의성어나 의태어 중심의 단어를 익혔다. 올해부터는 단어, 문장을 익히기 시작했는데 긴 문장, 어려운 문장도 호흡을 챙겨가며 제법 잘 읽어낸다. 하지만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듯 싶다. 어휘력, 사고력이 함께 자라나야 하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혼자서 책을 읽곤 하더라도 잠이 들 때에는 꼭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 주어야 한다.

  며칠 전 퇴근을 했더니 K가 그림을 그리느라 분주했다. 동화책의 그림과 글을 큰 종이에 옮기고 있었다. 동화책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책을 만드는 작업은 대여섯살 때 부터 해오던 일이라 새로울 게 없었으나 직접 글을 쓰는(아니 그리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또박또박 쓴 글자마다 색상을 입혔다. 초록색으로 표현한 잔디의 모습은 꽤 그럴듯 했다. 이날 두페이지를 완성했고 나머지도 그려서 책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과연 완성된 책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와 놀아야 하고, 숙제도 해야하고, 간식도 먹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9시 전에는 어김없이 피곤함이 밀려온다는 K.

K가 옮긴 이 글귀가 아빠에게 하고픈 말이 아닐까 싶다. 이말은 내가 세상 부모들에게 하고픈 말이기도 하다.

밀지마, 밀지마 !

천천히, 천천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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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도 울게 만든 TV

과학자, 발명가로서의 나의 일생의 업적 가운데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브라운관의 발명이다. 나의 브라운관이 텔레비전을 낳고, 그 텔레비전이라는 과학의 산물이 지구 위 인간의 총체적 백치화와 저질 문화를 초래하는 현상을 보면서 서글퍼 한다.

당신의 자녀가 똑똑하길 원하면 요정이야기를 읽어 주어라. 당신의 자녀가 더 똑똑하길 원하면 더많은 요정이야기를 들려주어라.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걸 그만둬야 한다. 그리고 TV 프로그램을 보는 대신 자연계의 동물, 식물 혹은 자연현상에 눈을 돌려야 한다.

첫번째 글은 TV시대를 열게한 브라운이 남긴 말입니다. 두번째 글은 엉뚱하게도 아인슈타인이 한 말입니다. 세번째 글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시모무라 오사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이공계 기피를 해소하고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 갈등의 많은 부분은 TV, 컴퓨터, 스마트폰 또는 TV속 장난감으로 인해 시작됩니다. 부모의 걱정, 주도권, 아이의 욕망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에는 대개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이 아이들에게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많지 않을 줄로 압니다. 다만 왜 나쁜지, 언제부터, 어느정도 까지 허락해야 하는지,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교육에 관한 부분이라 정답이 있을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부분, 그리고 올바른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지식의 파편들을 공유하니 잘 조합해서 심리적인 불안과 혼란을 줄이는 데 쓰시기 바랍니다.

 
1. 스크린을 보는 시간을 제한하라고 전문가들은 촉구한다.

3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스크린을 차단해야 한다. – 미국 소아과학회

스크린의 신기함이 도파민을 분비하게 한다. 이는 스크린 중독과 집중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 – 시그만 박사

  뉴욕타임즈 기사 원문보기(2011.10)

  BBC기사 원문보기(2011.10)

  베스트베이비 한글기사 보기(2008.7)

 

2. 기술이 학교의 수업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가?

2012년 교과부가 스마트교육을 시범사업으로 시작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태블릿을 나눠주고 수업을 한다는 것이었죠.

ICT교육에서 컴퓨터를 태블릿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기재부에서 타당성 부족으로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컴퓨터를 활용한 교육, 얻는게 많을까요? 아니면 잃는게 많을까요?

 뉴욕타임즈 기사 원문보기(2012.11)

9NEWS(2013.5.20)

 

3. 컴퓨터를 가르치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학교

구글, 페이스북, HP등 세계적인 IT기업이 밀집한 실리콘 밸리에 있는 이상한 학교를 소개합니다.

왜 세계적인  IT기업의 임직원들은 컴퓨터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것일까요?

  뉴욕타임즈 기사 원문보기(2011.10)

  관련 한글 기사 보기

 

4. 버튼만 누르면 해결되는 놀거리와 영혼의 건강

발도르프교육에서 미디어, 전자식 장난감을 바라보는 관점과 교육의 방향을 소개하는 자료로 이전에 작성한 블로그입니다.

  블로그 보러가기 

 

나는 학교에 많은 컴퓨터를 보급하는데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키워주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컴퓨터는 사람이 하는 방식으로 호기심을 키워줄 수 없다. 새로운 발견을 위한 요소는 도처에 널려있다. 컴퓨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신의 반열에 오른 고 스티브 잡스의 말입니다.

2013 한국 인지학 컨퍼런스를 열며

 

2003년부터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지만 꽤 잘사는 국가,

2010년 이후 청소년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로 떠올랐지만

교육열이 제일 높은 국가,

대한민국에 당신은 살고 있습니다.

‘1’ 이라는 멋지고 화려한 숫자 너머에서

아이들은 오늘도 빛을 찾아 헤매이고 있습니다.

 

부와 화려함으로 가득 채워진 사회,

소유와 소비가 지배하는 일상,

바깥으로 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는 정보와 자극의 무게로

아이들은 바로 서 있는 것 조차 힘겨워 합니다.

 

2013년 4월 25일,

‘인지학에서 바라본 사회적 치유’라는 주제로 열릴

<2013년 한국 인지학 컨퍼런스>는

우리 시대의 아픔에 대한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 묻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인지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건강한 어른,

당신을 초대합니다.

 

컨퍼런스 등록하기

 

 

2013 한국 인지학컨퍼런스 포스터

2013 한국 인지학컨퍼런스 포스터

 

 

발도르프학교의 통지표

K가 1학년 과정을 마치고 긴긴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발도르프학교에서 첫 통지표를 받았다. 그런데 부모인 내가 왜 이렇게 설레였을까? 세상의 모든 학부모들이 처음엔 다 그랬을 것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수치화된 성적이나 순위 따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1년 과정을 마치면 아이의 학교생활, 발달상황 등을 기술한 통지표를 받게 된다. 나의 부모님은 교과목 별로 기재된 성적과 ‘ 수 우 미 양 가’ 와 같은 평가치, 그리고 반 석차를 보고서 학교생활을 짐작하셨겠지만 결국 성적얘기 뿐이었다. 좋은 성적을 받았으면 훌륭하게 학교생활을 해낸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에 관심을 보였는지, 어떤 배움에 어려움을 보였는지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K의 통지표에는 신체발달 상황, 학교생활, 교과목별 활동내용과 성과, 종합평가가 수록되어 있었다. 부모로서 궁금해 하는 K의 학교생활에 관한 얘기는 학교생활과 종합평가에 담겨져 있었다. 매달 담임선생님과 만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참관할 기회도 있지만 아이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게 된다. 지난 1년의 과정을 통해 아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선생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부모로서 이 조급함과 궁금증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이런 번잡한 마음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발도르프학교 학부모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발도르프교육에 뜻이 있는 부모들을 위해 K의 사생활을 살짝 공개한다. K의 동의없이…

작은 체구에 투명하게 하얀 피부를 가진 K는 1년 사이 많이 자랐습니다. (중략) 환한 표정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K는 가방을 사물함에 정리하는 것보다 교실과 친구들에게 늘 관심이 가 있었습니다. 가방은 사물함 앞에 놓아 둔 채로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나 관심거리들을 나눕니다. 그래서 얘기를 한번 해주면 뭔가 아쉬운 듯이 와 재빨리 가방을 정리합니다. 아침 열기 전 손잡고 인사를 나눌 때 어찌나 마음이 급한지 인사가 끝나자마자 얼른 손을 빼가던 K는 지금은 조금 여유를 가집니다. (중략) 교실 질서와 흐름 속으로 K는 참 천천히 들어왔습니다. 초를 켜고 고요히 아침을 열고 시를 바르게 서서 함께 낭송하는 시간이 K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중략) 2학기에도 그런 K의 모습은 조금 남아있지만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어떤 질서 속에서 흐름을 타고, 경계에 인식을 가지는 것에 아직은 어린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의 흥미와 관심을 친구들에게 표현하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발표를 정말 열정적으로 했습니다. 조용히 손을 들고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발표에 대한 강한 열망을 언제나 표현하는 편이었고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을 때 아쉬움도 자주 표현했습니다. 수업시간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면 자주 표현함으로 흐름이 끊길 때가 있습니다. 그럼 아이들도 그 이야기에 꼬리를 물고 교실이 이야기장이 됩니다. 그럴 때에도 손을 들고 이야기 하도록 지도를 합니다. (중략) 공책 작업을 할 때도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게 아닌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하는 것과 조용히 자기 공책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제 의도 속에서 많이 부자유스러워 했습니다. 리코더를 부는 것을 어려워 했습니다. 손이 작긴 하지만 손가락에 있는 소근육들이 연습이 되면서, 호흡도 차분하게 되면서 리코더 소리를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으로 나가 활동적으로 움직입니다. 나들이나 소풍을 갔을 때도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K는 이제 막 하늘을 날기 시작한 아기새 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아기새가 조금씩 세상을 경험하면서 경계와 질서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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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공동체, 삶과 죽음에 대하여

광고들어갑니다.

5-   4-   3-   2-   1. 땡!~~~~

‘발도르프’라는 말은 한번씩 들어보셨죠? 발도르프교육은 인지학이라는 정신과학을 바탕으로 100년전에 시작된 교육입니다. 인지학은 ‘인간 본질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학은 인간의 본성과 의식의 진화에 관한 통찰로부터 인간과 우주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발도르프교육, 오이리트미, 인지의학, 유기건축, 생명역동농법, 소셜파이낸스, 캠프힐운동 등이 생겨났습니다. 오는 4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발도르프교사들이 한국에 모여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발도르프 유치원, 학교의 교사들을 위한 교사컨퍼런스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지학컨퍼런스가 개최됩니다.

이에 앞서 인지학과 발도르프교육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공개강좌를 진행합니다. 연사는 미하엘 데부스 선생님입니다.

아래 일정 참고하시어 관심있는 교사, 학부모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월20일(수) ~ 22일(금), 오전 9시30분 ~ 12시

* 장소 : 과천시 과천문화원 관악홀

* 주제 :

  • 20일(수) 발도르프교육과 인지학
  • 21일(목) 학부모의 과제와 학교의 과제 – 학급 공동체는 무엇인가?
  • 22일(금) 나는 왜 세상에 왔을까? –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삶과 죽음에 대하여.

 

 

* 일시 : 2월21일(목) ~ 23일(토)

* 장소 :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 주제 : 인지학의 관점에서 본 미래의 사회

  • 21일(목) 오후 7시 30분~9시 공동체의 의미. 어떻게 공동체가 형성되는가? 공동체가 왜 필요한가?
  • 22일(금) 오후 7시 30분~9시 새로운 세상은 어떻게 오는가? 자유의 인간
  • 23일(토) 오전 10시 30분~11시30분 옛 공동체와 새로운 공동체

+ 공개강좌의 참가비는 매 강의별 만원입니다.

 

* 강사: 미하엘 데부스

– 독일 인지학협회 의장 역임

– 독일 슈투트가르트 자유신학대학 대표교수 역임

– 독일 튀빙엔과 에어랑엔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철학 전공

– 현 그리스도교공동체 독일 뫼링엔교회(Christengemeinschaft)주임사제

 
흔히 교육 선진국을 말할 때, 독일이나 핀란드를 첫번째로 꼽습니다. 핀란드의 교육성과는 세계 최고지만 그 나라의 청소년들도 그리 행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09년 데이타로 핀란드 청소년의 자살율은 우리나라의 두배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가 조금 더 높을 것 같습니다.(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율은 10만명당 13명, OECD국가중 2~3위 수준일 듯)

하지만 독일은 다릅니다. 독일은 두번의 전쟁을 치르고 교육에 대한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발도르프교육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공교육은 발도르프 교육의 시스템과 방법론을 도입합니다. 예를 들어, 남녀공학, 주기집중수업, 서술적인 평가, 학습 부진아를 위한 개별계획, 1학년 부터 시작되는 외국어 수업, 학교 행정조직의 자치운영, 그리고 학부모 참여 등이 그것입니다.

공부 못하는 나라, 독일에 대한 지식채널 보셨나요?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쓰고 읽습니다

발도르프학교 1학년 한글 에포크 노트

   지난 주말 K는 처음으로 ‘숙제다운 숙제’를 받아왔다. ‘숙제다운 숙제’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내준 과제들처럼 누가봐도 숙제라고 할만한 그런 것들 말이다. 글쓰기, 셈과 같이 방과후에 집에서 해야 했던, 노는 시간을 빼앗아 갔던 그런 숙제들 말이다.
   지금까지 K가 받아온 숙제는 방학때 자연속에서 충분히 놀기, 추석때 아빠한테 노래 가르쳐 주기, 뭐 이런 것들이었다. 여튼, 지난 주말 K가 받아온 숙제는 ‘엄마, 아빠, 동생의 이름을 예쁜 종이에 적어오기’ 였다. 요즘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한글은 기본으로 익혀가야 한단다. 게다가 영어, 산수 정도는 가르쳐 보내야 기죽지 않고 학교생활을 한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현실이다. K는 대안학교에 보낼 생각을 했었고, 대안학교에 보내지 않더라도 한글교육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에 미리 가르치진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와중에 스스로 글자를 깨치는 영특함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지금도 자기전에는 꼭 책을 읽어 줘야만 한다.
   K가 1학기 중에 배운것은 자음이 전부였다. 그림그리듯 자음을 그려보고 ‘ㄱ’, ‘ㄴ’, ‘ㄷ’의 모양이 숨어있는 물건들을 찾아 헤맸다. 의성어들을 통해 자음이 갖는 소리의 특성을 느껴보곤 했다. 2학기 들어서 ‘ㅏ’, ‘ㅜ’, ‘ㅣ’ 같은 모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글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책을 읽거나 길을 가다 아는 글자가 보이면 자랑스레 글자를 읽어 보인다. 또래 아이들이 1년전에 보였을 모습이라 생각하면 살짝 웃음이 난다. 하지만 조급해 지지는 않는다. 그 시기에는 빨리 읽고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발도르프교육의 읽기, 쓰기에 관한 소개글이다.

*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육소위에서 번역한 자료입니다.

Literacy, Not Just Reading

발도르프 학교에서 언제 어떻게 읽기를 가르치는지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우선 발도르프 학교의 전체 교과과정이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발도르프 학교가 영적인 삶을 다시 일깨우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 발도르프 교과과정과 교육이념(pedagogy)이 이 과업을 위한 실용적 도구가 되어 현대 삶 속에 자리한 물질주의의 경직되고 편협한 영향력에 정면으로 맞서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 역점을 둔 것 중 하나가 아이들 안에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 능력을 발달시켜 이를 바탕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목적이 분명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발도르프 교육을 미래를 위해 뿌려진 하나의 씨앗으로 보았던 것이다.

아이에게 평생 신어도 닳지 않는 단단한 강철 신발을 주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근시안적 방법을 쓰면 즉시 어려움에 처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필요라고는 없는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개념들을 제공하고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별 심사숙고도 없이 그저 아이들이 이런 파편화된 정보 조각들을 가지고 나아가 삶과 대면할 수 있으리라 막연히 기대한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은 이해에서 나오고, 이해는 경험에서 나온다. 아이의 발이 커지는 것처럼 경험과 이해, 지식도 살아가는 내내 변화를 거듭하며 자란다. 삶이라는 고된 길을 따라가는 동안 유연하게 발을 감쌀 수 있는 신발이야말로 훌륭한 신발이다. 그리고 신발이 닳아지면 애석하기는 하지만 이제까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옆으로 벗어 놓으면 된다. 반면, 계속 커지지도 안는 신발이 닳지도 않고 벗어 던질 수도 없다면 발은 불구가 되거나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될 뿐이다. 물질주의적인 교육, 정보 제공에 치우치는 교육은 이런 신발과 마찬가지이다. 대신 그러한 교육에서는 발을 다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불구가 되고, 나아가 감정을 사로잡아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사고가 지닌 능력까지도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발도르프 교육이 언어 과목에서 지향하는 목표는, 모든 아이들에게 언어가 지닌 힘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는 것이다. 읽기 교육은 이런 언어 과목에 포함된 필수적인 부분일 뿐이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읽기에 대한 첫경험이 아이 스스로 살아있는 언어를 경험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다른 전통적인 학과목들은 물론이려니와 읽기 역시 가르치지 않는다. 유치원 시기에 아이 스스로 글 읽는 법을 깨우쳤다면 멋지고 훌륭한 일이다. 읽기를 억지로 배우지 못하게 막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가르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혼자 글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의 활동을 모방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임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일은 세상의 자연물들을 경험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차츰 자연과, 그리고 동료인 인간에 대한 깊고 경건한 사랑을 키워 나간다. 활동, 즉 아이들 스스로 하는 활동과 아이들이 기꺼이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어른의 활동이 기본이다. 노래 부르기, 역할놀이, 달리기, 뜀뛰기, 쌓고 허물기, 간단하지만 아주 필수적인 집안일하기,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법 배우기 등이 이 시기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이다. 학과공부는 이후에 초등학교 과정에서 충분히 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서기, 걷기, 말하기와 마찬가지로 읽기도 저마다 자기만의 속도로 배운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시기보다 일찍 서둘러 읽기를 배울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는 정서적으로든, 생리적으로든, 아니면 학업적으로든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때 이른 읽기 교육에 내몰리면서 나타나는 가장 안타까운 징후 중 하나가, 정상적인 능력과 지능을 가진 아이들 가운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과 전자 오락물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자기 속도에 맞추어 편안한 환경에서 배웠더라면 읽기를 잘 배웠을 아이들이 이제는 읽기 자체에 대해 깊은 반감이나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다. 교육을 끌고 가는 정치 세력들은 자기들이 내놓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은 물론 교육과 사회 일반의 미래 행복에 얼마나 해로운 결과를 미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발도르프 교육의 읽기나 다른 과목 수업에는, 수업 방향이나 진도에 대해 엄격하게 시기별로 정해진 목표가 없다. 그런 목표들은 충분히 빨리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오히려 담임교사는 학습 내용이나 반 아이들의 다양한 기질, 성숙 정도, 학습 능력에 따라 폭넓고 유연하게 수업을 진행해 나간다. 시험을 위한 숙련도가 아니라, 상(그림)을 빚어내는 상상력을 키우고 배움 그 자체가 각 아이의 내면에서 살아있는 힘이 되는 그런 환경이 목표이다.

교사가 반 아이들에게 상상력이 넘쳐 나는 상들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제각각 이 상들을 개인적 경험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이런 개인적 경험이, 아이들이 열의를 가지고 건강하게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파편화된” 정보 조각의 산물이 아닌, 진정한 상상력에 기반을 둔 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자신의 개념적 삶 속에서 유연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 삶으로, 삶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교육이야말로 건강한 교육이며, 미래와 그리고 개인의 삶은 물론 인류의 문화·사회적인 삶 전체를 위해 뿌려진 씨앗이 된다.

이제 읽기와 읽기 수업으로 돌아가보자. 상을 빚어내는 발도르프 교육의 특징은 1학년에서 아이들에게 문자를 소개하면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읽기의 첫 수업들은 옛이야기(fairy tales) 속의 원형적인 도덕 이미지들로 시작한다. 마법을 부리는 뱀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뒤 아이들이 뱀 그림을 그린다. 뱀을 그리면서 구불거리는 뱀의 몸짓이 생겨난다. 그리고 나서 교사가 뱀(snake)이란 단어의 첫 글자(s)와 그림 속 뱀의 모습 에서 뱀이 내는 소리[s-]를 찾아 들려준다. 거기에서 비로소 ‘s’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자음의 원형적 소리와 그 현대적 재현 간에 존재하는 다른 상형문자적 관계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오이리트미 교사는, 언어 오이리트미의 원형적 몸짓 속에서 이에 상응하는 언어의 이미지들을 창조해내는 작업을 통해, 담임교사의 작업을 지원하고 심화시킨다. 모든 자음이 일일이 이런 방식으로 제시될 필요는 없다. 아이들 스스로 얼마든지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음은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통해, 모음은 내적인 혼의 몸짓을 통해, 모든 문자들이 제시되고 나면 쓰기 교육을 시작한다.

읽기가 수동적인데 비해 쓰기는 능동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쓰기가 읽기보다 조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사람들은 읽을 수 있게 되기 전에 쓰기부터 해야 했다. 발도르프 교육은 가능한 충실하게 인류의 의식(consciousness)이 발전해 온 과정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발도르프 교육의 읽기 교과과정은 사실상 쓰기 교과과정이며,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쓰기 활동에서 생겨난다. 공책에 그린 표시들이 갑자기 이해되어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오는 그 깨달음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교사가 지어낸 문장들을 옮겨 적어 아름답게 자기만의 책을 만들어 나가는데, 발도르프 교육은 이를 통해 아이들이 그 깨달음의 경험을 준비하도록 하며,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읽기에 친숙해진다.

쓰기를 통해 읽기를 배울 때 아이들은 처음에는 상상을 동원하여 문자를 재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간단한 문장 베껴 쓰기로 나아가고 나중에는 이야기 전체를 베껴 쓴다. 특히 1학년 시기의 목표는 이후 학년들에서 배우게 될 매우 까다로운 언어 교과과정을 뒷받침할 깊고 탄탄한 기초를 다지는 데 있다.

1학년 과정에서 아이들은 매일 시와 이야기를 접하면서 언어를 풍부하게 경험한다. 시는 기억력을 개발시키면서 동시에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훈련시킨다. 옛이야기들은 서사에 대한 감각을 개발시키면서 동시에 심오하고 원형적인 혼의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교사가 직접 지은 글을 칠판에 써놓으면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그대로 베껴 쓴다. 이런 교사의 글 속에는 자기 학급 특유의 요구들을 깊이 다뤄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다른 읽기 학습 교재들과 마찬가지로, 교사가 직접 쓴 글에서도 어휘와 구문이 제한되고 특정한 발음 유형이 강조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쓴 글은, 살아 있으며 특정한 학급과 그 학급의 생생한 순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교과서도 이렇게 적합하게 딱 맞아떨어지기란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종류의 글을 상점에서 산 선물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만든 선물을 받는 것처럼 여긴다.

이미 글을 터득한 채로 입학하는 1학년 아이들에게 과연 발도르프 교육이 어떻게 다가가는지, 그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지,수업을 지루해 하지 않는지 하는 등의 질문들이 자주 제기된다. 아주 좋은 질문들이다. 그에 대한 답은 부모가 발도르프 교육의 목표에 얼마나 열려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만약 부모가 학교를 회의적이거나 적대적으로 여기는 듯한 느낌을 아이가 경험한다면 아이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부모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면 아무리 훌륭한 교사와 함께 한다고 해도 아무런 혜택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상상력이 풍부해지기를 바라고, 이웃이나 친척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빨리 글 읽기를 배우지 않아도 좋다고 확신한다면, 아무리 학습적으로 앞서 나간 아이라 하더라고 발도르프 교육을 즐기고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활동들에서 자양분을 받는다. 이런 활동들이 아이의 혼에 울림을 일으키며 삶에 목표와 유연성을 부여한다. 이런 것들은 양에 연연하는 정보 중심의 교과과정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2학년은 아이들 대부분이 자신이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발견은 가장 놀라운 형태로 일어난다.매일 쓰기 시간에 담임 교사는 그 날의 쓰기 과제를 읽는다. 아이들은 교사의 소리를 듣고 따라 읽는다. 놀랍게도 교사의 소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혼자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난다. 아이는 눈을 아래로 내려 자기 공책에 전날 적어 놓은 쓰기 과제를 보며 스스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로써 삶의 커다란 문지방 하나를 넘은 것이다.

3학년이 되면 자신의 공책과 함께 인쇄된 “진짜” 책을 읽는다. 2학년 때 인쇄된 읽을거리를 도입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담임교사의 몫이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 인쇄된 책을 읽는 것이 읽기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이 된다. 또한3학년은 학생들이 각자의 공책에 각자의 말로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런 독립적인 작업을 2학년 때 처음 시작하기는 하지만, 3학년이 되면 언어 교과과정에서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담임교사가 제시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학생들은 각자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탐색해 나간다. 풍부하게 쓰는 학생들도 있고 신중하게, 혹은 유려하게 쓰는 학생들도 있다.중요한 것은 각자가 이전 학년에서 경험했던 서사와 인물(character), 묘사 등 모든 것들을 자기 안에서 끌어올려 그려낸다는 것이다.

4학년 이상이 되면 교사가 쓴 것을 학생들이 따라 쓰는 일이 매우 적다. 극히 축약된 정보나 양식적인 예시가 필요한 경우에만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을 쓴다. 이제 읽기는 각자의 일과에서 규칙적인 부분이 된다. 집에서 매일 읽기를 하고,말로든 글로든 읽은 책들에 대한 생각을 학급 전체와 지속적으로 나누는 과정이 진행될 수 있다. 작문과 문학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문법을 공부한다. 중등과정이 시작될 무렵이 되면 발도르프 학교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 강해지고, 앞으로 이어질 학년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 그 형식을 탐구하는데 필요한 훌륭한 기초를 가지게 된다.

언어능력과 관련하여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 중요하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떤 학급에서든 단순히 늦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언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TV의 파괴적인 영향력에서부터 생리학적이고 언어심리학적인 장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다루는데 있어 쉬운 해답이란 결코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든 간에 학생 본인과 교사 그리고 부모에게 반드시 필요한 세가지는 인내와 연민,그리고 노력이다. 근심하고 과잉보호하고 질질 끌면서 뒤로 미루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치원에서부터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어떤 종류이든 학습장애의 징후가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많은 유형의 검사 방법들이 있어서 우리가 평가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진단결과들에 대한 평가가 때때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기초능력(basic skill)을 배워야 하는 아이가 분명 있지만, 치유 작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교정(remediation)에 기반한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항상 기억해야 한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이뤄지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술적인 작업들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만 적합한 사치품이 아니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생활이 단지 경제적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교사와 가정이 서로 잘 이해하고 도와서 필요할 때 아이에게 보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발도로프 교육이 주는 모든 선물들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없다면, 학습적으로 조숙한 아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듯이, 학교와 가정 간의 상호관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발도르프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배움은 아이들이 지식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쓴다. 경험으로부터 이해가 생겨나고, 이해에서 사고가 자라난다. 모든 다른 과목들이 그렇듯이 언어 교과과정은, 상상력이 풍부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 각자가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을 대면하는 데 필요한 힘과 신념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시야(vision)과 사고를 키우도록 돕는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기계처럼 프로그램화되는 것에 저항한다. 굳어져 있는 정보는 우리를 무력하게 한다. 우리의 미래, 그럼으로써 우리의 자유까지도 도둑맞고 있음을 느낀다. 반면 발도르프 교육은 이러한 물질주의적인 교육의 반대편에 서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발도르프 교육의 핵심에 인간에 대한 영적인 상이 있으며, 읽고 쓰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교육 행위가 인류 의식의 진화 과정을 담고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도구로서의 연극

푸른숲발도르프학교 11학년, 졸업연극 초대장

작년 이맘때쯤 학교 게시판에서 11학년 졸업연극 초대장을 보았다. 주제가 가볍지 않았다. 이제 18살을 넘긴 아이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지, 맡은 배역을 어떻게 소화해낼지 궁금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동반할 수 없었던 터라 내 궁긍즘을 풀지는 못했다. 우리는 연극을 통해 오랜 작업의 결과만을 보게 되겠지만 연극을 준비한 학생들에겐 그 과정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오리라 확신한다. 그러한 과정이 아이를 한층 더 성숙한 존재로 만들게 될 것이다. 발도르프 교육이 지향하는 목적 중의 하나인 사고, 감정, 의지의 통합을 이루어 내는데 연극보다 훌륭한 수단은 없다고 한다. 배움의 도구로서의 연극, 발도르프교육의 중요한 커리큘럼으로서의 연극을 정리한 글을 소개한다.

*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육소위 번역팀에서 번역한 자료입니다.

Drama, a Tool for Learning 배움의 도구, 연극

   대부분의 우리들 부모세대는 연극을 하나의 여흥거리로 생각하며 자랐다. 연극 자체는 슬프거나 심지어 비극적일지라도, 그러나 공연장 가는 일은 주로 일상의 ‘심각한’ 일을 끝내고 난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즐길 수 있는 그런 일정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연극의 본질적 의미는 드라마가 시작 된 아주 초창기부터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변화시키는 그 힘에 깔려 있었다. <오이디푸스 렉스>를 보러 갔던 그리스인들은 오이디푸스의 ‘오만함’(hubris)을 단지 무대 밖에서 관전한 것이 아니었다. 오이디푸스 안에 구체화 된 자기 자신들의 ‘오만함’을 보았고 오이디푸스가 자아를 죽이고 자만심을 지혜로 변형시켰을 때 관객들 역시 그렇게 변화되었다. 오늘날 어떤 연극이나 영화가 감동적이었다는 말 속에도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이 되어 극장문을 나섰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연극이 성인들에게 ‘변화’의 힘을 제공한다면, 아이들에게는 ‘형성’하는 힘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아이들은 아직 완전한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연극이라는 경험은 아이들의 성격을 형성해 주고 보다 직접적으로 그들의 혼을 불러 일으켜 준다. 성인인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재발견할 필요가 있지만,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게되는 아이들에게 있어 연극은 자신의 혼이 지닌 잠재력을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연극의 많은 요소들이 아이들의 자각능력을 높여준다.

연극에서 배우는 타인의 관점에 직접적으로 놓이게 된다. 배역을 맡은 아이는 그 등장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발견하고 그 경험이 그 아이로 하여금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연극은 단순히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 것에서 얻을 수 없는 방식으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등장인물과의 거리는 책을 읽을 때보다 배우가 되어 연기할 때에 훨씬 짧아진다. 이야기를 듣거나 들려주는 것이 우리의 사고에 머무르는 반면, 연극은 우리 몸 전체를 끌어들여 이야기를 감정과 의지에까지 확장시킨다. 특히 아직 아이들 스스로가 자기 느낌과 감정을 충분히 찾아내지 못하는 저학년 시기에서, 연극은 타인의 느낌들을 탐험하고 쑥쑥 자라나는 자신만의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등장인물은 배우에게 감정을 “주는” 것이다.

또한 어떤 역할을 익혀서 무대로 가져가는 것, 다시 말해, “연기를 하는 것”은 의지를 위한 실험대가 된다. 학생은 배역을 연기하며 자신의 의지를 투여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한쪽으로는 조절되고 짜여진 맥락 안에서 기존의 감정들을 마음놓고 표현할 수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감정이 다치는 일 없이 몰랐던 새로운 감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피상적이지 않은, 충실한 감정으로 다가서는 새로운 방법을 탐험할 수 있다.

지도교사는 딜레마에 처한 배역을 통해서 아이들이 지니는 격한 감정과 문제행동을 지도해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 경우 아이의 지적인 주의력에 호소 하거나 직접적인 분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도가 가능하다. 추상적인 생각과 원칙들이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 되어 질 수 있다. 이런 구체적인 경험은 극 속의 주제를 아이의 몸과 감정 속으로 끌고 간다. 그리하여 손과 가슴은 머리를 돕고, 이 세가지가 하나의 경험 속에서 짜여져 아이에게 힘을 주고 배움을 제공한다.

이렇게 연극을 통해 발도르프 교육의 필수적인 목적 중 한 가지가 달성된다. : 사고, 감정, 의지의 통합.이런 이유로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몇 권의 책으로, 혹은 일부 관심 있는 아이들만의 동아리활동으로 연극을 접근하지 않는다. 연극은 교과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학급 전체를 위한 것인데, 그 어느 활동도 그만큼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아이 성격의 다양한 양상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극 작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또한 학급의 역동적인 관계에도 기여한다. 공연을 마치며 얻는 성취감이 자부심을 공유하게 하고 그로인해 반 아이들 사이의 유대감이 강화된다.  발도르프 교육이 그러하듯이, 연극 주제가 학급의 발달단계를 반영할 때에 ‘연극’은 아주 유익한 사회성 실험장이 된다

발도르프 학교 연극에서는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모든 아이들에게 동작과 대사가 주어진다. 연극은 개개인의 모든 아이들을 독립된 하나의 혼으로 그리고 한 사람의 사회적 존재로 자리매김해 준다.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조금씩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공연을 통해 얻은 자각과 자기조절을 통해 궁극적으로 아이는 삶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아이의 운명은 현재진행형인 인류의 연극무대에 등장하는 신들이나 영웅들의 운명만큼이나 각별하고 예측하기 힘들며, 그러나 보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