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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대안교육 법제화를 반대합니다
교육부가 대안교육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안학교가 미인가 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반길 만한 소식으로 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의도가 대안교육의 성과를 인정하고 교육의 선택권을 확장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대안학교의 등록을 강제하고 이행하지 않는 학교를 폐쇄하려고 합니다. 등록된 대안학교에 대해서는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당당히 밝히고 있습니다. 대안학교에서는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액의 ‘귀족교육’을 통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핑계일 뿐입니다. 학생 수도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이 연간 7만여명에 달합니다. GDP대비 교육재정지출 비중은 OECD국가의 평균을 상회하지만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바닥입니다. 게다가 학부모들은 학생 1인당 월평균 30만원의 사교육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이야 말로 개혁시켜야 할 대상입니다.
대안학교의 학비가 높은 이유는 학부모들의 학비만으로 땅과 건물을 구하고, 교사의 임금을 지급하고, 학교 운영비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대안학교에서는 학교 운영비를 절감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노역을 감내합니다. 경제적 부담도 크고,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학교를 위해 희생해야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교육이라 믿기에 애써 대안교육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공교육 개혁에 대한 학부모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혁신학교’의 성공을 통해 공교육에 대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혁신학교의 모델은 대안학교였습니다. 성공적인 대안학교의 운영방식,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한 것입니다. 대안학교의 성공은 ‘자율’에 기반합니다. 교사, 학부모, 학생의 자유로운 결사체가 대안학교입니다. 정부가 이를 깨닫지 못하고 교육을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쓴다면 교육의 미래는 없습니다. 공교육이 표방하는 ‘창의적인’, ‘전인적인’, ‘민주적인’ 시민양성은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너무 불행합니다.
교육부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라고. 당신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소양을 갖기 전에는…
대안교육연대에서는 대안교육 법제화를 반대하며 온라인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교육부는 2013년부터 대안교육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대안학교들과 수차례 비공식 대화를 하였다.교육부와 대화하는 가운데 대안교육의 자율성 보장과 공공성 확대를 위한 법안을 제정해야 하고,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우리는 교육부에 여러차례 전달하였다.
하지만 교육부는 법제정을 통해 제도권 밖에 있는 대안학교에 대한 등록을 강제하고, 미등록할 경우 폐쇄를 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대안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도ㆍ감독을 명문화하여 관리ㆍ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6월23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러한 교육부의 독불장군식 법 제정 행위에 대해 전국의 대안학교들은 대화를 통한 교육부와의 협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교육부가 추진하는 법제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결의하였다.
대안교육은 지난 20여 년 동안 국가의 간섭 없이 교육의 자율성과 운영의 민주성을 통해 성장ㆍ발전하였고, 제도교육의 경쟁과 입시중심 교육과정에 문제의식을 갖고 제도교육 밖으로 나온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와 같이 대안교육은 국가가 외면한 제도교육 밖 학생들에 대한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고, 교육정책의 사각지대에서 학습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에 대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교육을 실천하였다.
이러한 대안교육의 사회적 역할을 외면하고, 국가의 관리ㆍ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으로 대안교육 법제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대안교육을 죽이는 것이다. 국가가 관리ㆍ통제하는 대안교육은 제도교육과 무엇이 다른지, 대안교육의 발전에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교육부는 설명해야 한다.
또한 최근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역사 국정교과서 부활 추진 등 교육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흐름에 따라 제도권 밖에 있는 대안학교의 제도권 편입을 강제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교육의 다양성을 앞장서서 추구해야 할 교육부가 획일적 교육을 강요하고,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교육부에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요구한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안교육 법제화는 대안교육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대안교육을 죽이는 법이다. 따라서, 대안교육 법제화 추진을 교육부는 즉각 중단하라. 교육부의 시대착오적인 대안교육 죽이기에 맞서 어떠한 탄압이 있더라도 온 힘을 모아 우리는 대안교육을 지켜낼 것이다.2014. 7. 10
교육부 법안 저지와 대안교육지키기 비상대책위원회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책 표지 이미지
푸른숲발도르프학교 바자회에서 재미있는 책한권을 입수했다. 민들레에서 발간한 책들을 파는 코너가 있었는데 **아빠가 맡고 있었다. 바자회 내내 **아빠가 나를 따라다니는 기분을 느꼈다. 결국 사야만 했으리라. 그 분의 내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민들레에서 발간한 책이니 제도권교육에 대해 비판적일테고 교사, 부모의 성찰을 요구하는 책일 것이라 섣불리 짐작해 보며 그중 제목이 가장 섹시한(?) 책을 골랐다. 다행히 가격도 무척 저렴했다. 존 테일러 개토가 쓴 ‘바보 만들기’다. 부제는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 수록 멍청해 지는가’, 누가 붙였는지 참 멋지다. 한때 잘나가던 광고 카피라이터였다던 작가에게 부제를 요청했더라면 이정도 제목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그 일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교직에 투신한다. 이후 30년간 교직을 지키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교직사회에서 파격적인 행보라 하면 사실 관리자, 제도권, 허위에 대한 저항이라 봐도 좋을 듯 싶다. 조직화된 학교에서 자리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을 위해 투신한다면 충분히 파격적인 행보라 할만 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런 교사에게 세번씩이나 ‘올해의 교사상’을 줬던 것을 보면 그의 행보를 반겼을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 그리고 극소수 관료들의 답답함이 어느정도 였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작가는 시종일관 근대 의무교육의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가 내린 최종 결론은 중앙집권화된 의무교육의 사형선고다. 더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현재 교육제도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데 너무도 잘 성공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절대 폐기하지 못할 것이라 본 것이다. 나아가 제도권 교육의 붕괴를 위해 교육이 시장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경쟁할 것을 주문한다. 극단적인 처방이지만 어찌보면 현실적인 유일한 대안인지도 모르겠다. 세금을 학부모와 학생에게 돌려주고 교육주권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간섭하는 제도권 교육의 폐해는 많은 교육전문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라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을 통해 교육의 피해자인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과거의 상처를 또렷히 회상시켜 준다. 넘치는 위트로 제도권 교육을 옹호하는 저들을 비꼬기도 한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해법은 두가지다. 첫째, 교육을 우리의 삶속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 사회와 괴리된 채 학교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지금의 의무교육이고 아이들을 자기 삶의 이유를 모르는 기계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식민지시대 뉴잉글랜드 지역의 독립교회(조합교회라 해석하는데 어색해서)와 같은 자율적인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이 방식이 사실 신선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발도르프교육 철학을 이미 접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장하는 국가교육의 폐해와 그 해결책은 100여년전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시했던 바와 거의 일치한다. 미국이 문제삼는 의무교육의 뿌리는 프로이센의 교육모델이었다. 독일의 근대교육이 미국으로 수출되고, 미국은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은 한국에 전수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당시 독일 국가교육의 폐해를 보고 독립적인 학교의 설립을 주장했다. 국가의 간섭, 경제로 부터 자유로운 학교, 공동체로 이루어진 학교가 발도르프학교이다. 작가인 존 테일러 개토의 주장을 지지하고 탈학교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다고 한다. 그들은 발도르프교육을 들어보지 못했을까?
분명한 것은 발도르프교육 또는 인지학과 관련된 서적보다 이 책 ‘바보 만들기’의 책장을 넘기기가 더 쉽다. 교육을 아이들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저들을 향해 ‘빅엿’을 날려주니 통쾌하다. 하지만 그 이후엔 공허함이 남지 않을까 싶다.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탈학교, 홈스쿨링, 대안학교, 그 문턱을 넘기가 이 나라에서는 너무 어렵다. 하지만 일단 그 문을 넘어서면 왜 그토록 고민했을까 싶다. 어리석게…
대안교육연대가 보수언론의 색깔공세를 규탄합니다
일부 보수언론의 대안교육 ‘좌빨’ 매도 공세를 규탄합니다
일부 보수언론들이 대안교육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마녀사냥식 색깔공세에 나섰습니다. 5월 17일자 동아일보에는 “졸업식장서 北축사 읽고 간첩죄 8년 복역 교사도” (교사는 간첩죄, 학부모는 北과 연락 공유하는 학교 – 인터넷판)라는 선정적인 제목과 함께 늦봄문익환학교의 교사와 학부모, 교육과정 모두를 ‘좌빨’로 매도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부 보수언론사들이 줄지어 관련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아무런 확인과정도 없이.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는 현장 취재를 하거나 자료 요청, 사실 확인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그저 기사가 나가기 전 날, 의례적인 통보 형식의 전화만 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내용을 교묘한 짜깁기와 맥락 자르기의 편집 기술로 확대 과장, 왜곡하여 보도하였습니다.
늦봄문익환학교는 평생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하셨던 고 문익환 목사(호는 늦봄)의 삶과 얼을 기리고 배우고자 많은 시민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대안학교입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타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평화를 사랑하고 환경을 살리는 세상을 꿈꾸며 행복하게 배우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경쟁 속에서 이기는 기술을 배우기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배웁니다. 소록도 한센병원 봉사활동, 남도 생태기행, 모내기와 추수, 흙집 짓기 등의 교육활동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대안교육은 그 동안 우리사회의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며 실천해 왔습니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억압보다는 자유를, 맹목성보다는 창의성을 존중하며 삷과 배움이 하나로 연결된 교육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러한 성과들이 공교육에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쳐서 제도 밖 대안교육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교육이 건강하게 변화하는 데 기여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늦봄문익환학교 또한 이러한 길에 함께 해 온 대안교육현장입니다.
따라서 작금의 일부 보수언론에 의해 자행하고 있는 늦봄문익한학교에 대한 색깔공세는 대안교육 전체에 대한 부당한 왜곡이요, 매도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심한 모욕감을 느끼며 분노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왜곡 편파보도를 한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사들을 규탄하며, 작금의 행태를 중단하고 공식적인 사과, 정정보도, 반론 지면을 제공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2012년 05월 23일
대 안 교 육 연 대
대안교육에 대한 대안이 있는 정당, 녹색당
2012년 3월 4일, 우리나라에도 녹색당이 창당되었다. 창당을 준비한지 넉달 만에 이뤄낸 성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일본보다도 앞섰다는 사실이 놀랍긴 하다. 하긴 현재 일본은 54기의 원전중 1기 만이 가동중에 있고 이마저 곧 중단될 예정이다. 녹색당이 탄생하기도 전에 이미 탈핵을 이룬 셈이다.
녹색당이 추구하는 많은 가치들 중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녹색당이 내세운 청소년, 교육정책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교육은 공공재 이다.
- 경쟁 위주의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경쟁을 유발하는각종 차별의 철폐)
- 교육 현장의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 청소년의 인권,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답은 없다는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잘 꿰뚫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설정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풀어나가는 동안 많은 저항에 부딪힐 것이 분명하다. 사실 대선, 총선에서 교육정책을 다루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 한다. 워낙에 생각의 편차가 크고 이해관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의 여당, 제1야당에서는 교육정책 다운 정책을 선보이지도 못했다. 그저 정부 재정을 확대하여 보육비,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정도이다. 이런 것을 교육정책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정치인들은 교육문제를 화두로 꺼내기 싫어한다.
녹색당의 교육정책에서 더욱 반가운 공약은 제도권 밖의 교육, 대안교육에 있다. 대안교육에 대한 정책을 제시한 정당은 녹색당이 유일하다. 녹색당이 제시한 대안교육 정책은 다음과 같다.
- 제도교육 밖으로 나온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비용을 모두 자신 또는 가정에서 부담하게 됩니다. 이는 분명하게 형평성에 어긋나고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며, 제도교육에서 무상교육의 도입이 확대되고 있는 것과도 대조적인 상황입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직접 교육수당을 지급함으로써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겠습니다.
- 대안교육기관, 평생학습기관, 홈스쿨링 등 제도교육 밖 다양한 형태의 교육기관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배움을 지속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습니다.
- 대안교육기관을 졸업한 학생들은 각 교육기관이 추구하는 바에 따른 교육과정을 이수하였음에도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학력에 따른 차별이 실질적으로 사라지기까지는 손해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방식의 교육 형태와 이를 통한 학력을 인정하도록 법제의 정비를 추진하겠습니다.
- 청소년들이 교육받을 권리가 보다 전면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국가주도의 교육에서 청소년의 교육기본권이 보장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위해 전반적인 법제도의 개선과 지원 기관의 설치 등을 추진하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녹색당이 어떤 이미지로 비춰질지 잘 알고 있다. 1980년 서독에서 녹색당이 창당되었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왜 발도르프학교를 택했을까
우리나라에서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자식에게 일체의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공교육에 비해 높은 학비는 제쳐두고서라도 주변의 편견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편견이라는 것은 진실된 모습이 아닌 제3자가 바라본 왜곡된 상일 것이니 개의치 않아도 좋으리라. 남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시시콜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 관한 것이다. 내가 아이의 앞날을 언제까지 염려해 주어야 할까. 내가 예측하는 앞날이 과연 현실이 될까. 내가 성인이 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해 준들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성인이 되기까지 기본적인 인성과 지식을 갖추게 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추게 한다면 더이상 걱정할 것은 없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현재의 행복을 위해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많은 대안학교 중에서 발도르프학교를 선택하게 된 이유들을 정리해 본다. 10년이 지난 뒤에 나의 생각과 기대치는 어디에 머물러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일상의 톱니바퀴 속에서 허우적댈 때 나의 첫 마음가짐을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
-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시키지 않겠다.
- 끝없는 경쟁으로 치닫는 지금의 공교육, 인간을 재화로 바라보는 공교육을 반대한다.
- ‘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인간이 가진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곧 교육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라는 발도르프 교육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자연을 가까이 하고 인간도 그 일부임을 배웠으면 한다.
- 인간의 삶이 충분히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스스로 갈길을 모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대학 진학이 인생의 필수 관문이라 생각치 않는다.
- 교육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끝없는 상호작용과 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도 그 과정의 중요한 주체이기에 적극적으로 교육에 동참해야 한다.
- 대안적인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학교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살고 싶지 않다.
- 그리고…
대안학교는 귀족사립학교와 다른가?!
공교육의 문제점이 심화되면서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명 대안학교들은 높은 경쟁률 때문에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공교육이 정상화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겠으나 대안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선택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자식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부모의 열망만으로 대안학교를 선택했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이다.
우선 대안학교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자. 대안학교라고 하니 당연히 대안교육을 실천하는 곳일테고 대안교육이라 하면 공교육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교육일 것이다. 공교육에서 생기는 문제라면 입시위주의 교육,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사고력과 창의성 부족, 자존감 상실, 자율성 부족, 인성결여 등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은 이런 문제인식에서 출발했으며 이를 풀어나가기 위해 교육 철학을 세우고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문제는 제도권 교육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이 단편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해소될 수 없다는데 있다. 만약 좋은 교육과정의 도입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면 공교육시스템 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개선될 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공간과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부모, 그리고 그 구성원들을 둘러싼 사회가 함께 변화해 나가야 한다. 현대의 물질만능주의, 경쟁지상주의의 허상을 깨닫지 못하고 참교육을 실천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따라서 대안적인 사회를 꿈꾸고 구성원 모두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가 바로 대안학교일 것이다. 학교가 추구하는 목표가 공교육에 비해 높은 학업성과와 예체능교육이 전부라면 그 학교를 대안학교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소위 ‘귀족사립학교’라 불리우는 학교들이 이런 류의 학교들이 아닐까 싶다.
위키피디아에서는 대안교육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대안교육은 제도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를 구성하면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대안학교는 학교마다 서로 다른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교육목표와 학교의 운영에서 매우 상이한 모습을 보이지만, 모두들 철학과 영성을 중시하고, 소규모로 운영되며, 삶이 곧 학습이며 진정한 체험을 통해 ‘지,정,의’의 고른 영역의 교육을 균형있게 운영하려 하고, 학부모와 학생을 교육의 주체로서 교육활동에 적극 투입하고, 지역사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살아있는 교육을 실시한다.
우리의 교육이 30년전, 40년전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뒤를 보고 자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른들의 탐욕과 위선들로 가득차 있다. 그 어른들이 어렸을 때 본 어른들의 뒷모습을 지금 우리 아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