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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지마, 밀지마! 천천히, 천천히!

2013-10-12 12.24.13

   K는 이제 글을 웬만큼 쓰고 읽을 줄 안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를 지나는 지금에서야 말이다. 지난 1년은 자음과 모음을 공부했고, 의성어나 의태어 중심의 단어를 익혔다. 올해부터는 단어, 문장을 익히기 시작했는데 긴 문장, 어려운 문장도 호흡을 챙겨가며 제법 잘 읽어낸다. 하지만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듯 싶다. 어휘력, 사고력이 함께 자라나야 하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혼자서 책을 읽곤 하더라도 잠이 들 때에는 꼭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 주어야 한다.

  며칠 전 퇴근을 했더니 K가 그림을 그리느라 분주했다. 동화책의 그림과 글을 큰 종이에 옮기고 있었다. 동화책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책을 만드는 작업은 대여섯살 때 부터 해오던 일이라 새로울 게 없었으나 직접 글을 쓰는(아니 그리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또박또박 쓴 글자마다 색상을 입혔다. 초록색으로 표현한 잔디의 모습은 꽤 그럴듯 했다. 이날 두페이지를 완성했고 나머지도 그려서 책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과연 완성된 책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와 놀아야 하고, 숙제도 해야하고, 간식도 먹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9시 전에는 어김없이 피곤함이 밀려온다는 K.

K가 옮긴 이 글귀가 아빠에게 하고픈 말이 아닐까 싶다. 이말은 내가 세상 부모들에게 하고픈 말이기도 하다.

밀지마, 밀지마 !

천천히, 천천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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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도 울게 만든 TV

과학자, 발명가로서의 나의 일생의 업적 가운데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브라운관의 발명이다. 나의 브라운관이 텔레비전을 낳고, 그 텔레비전이라는 과학의 산물이 지구 위 인간의 총체적 백치화와 저질 문화를 초래하는 현상을 보면서 서글퍼 한다.

당신의 자녀가 똑똑하길 원하면 요정이야기를 읽어 주어라. 당신의 자녀가 더 똑똑하길 원하면 더많은 요정이야기를 들려주어라.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걸 그만둬야 한다. 그리고 TV 프로그램을 보는 대신 자연계의 동물, 식물 혹은 자연현상에 눈을 돌려야 한다.

첫번째 글은 TV시대를 열게한 브라운이 남긴 말입니다. 두번째 글은 엉뚱하게도 아인슈타인이 한 말입니다. 세번째 글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시모무라 오사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이공계 기피를 해소하고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 갈등의 많은 부분은 TV, 컴퓨터, 스마트폰 또는 TV속 장난감으로 인해 시작됩니다. 부모의 걱정, 주도권, 아이의 욕망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에는 대개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이 아이들에게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많지 않을 줄로 압니다. 다만 왜 나쁜지, 언제부터, 어느정도 까지 허락해야 하는지,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교육에 관한 부분이라 정답이 있을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부분, 그리고 올바른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지식의 파편들을 공유하니 잘 조합해서 심리적인 불안과 혼란을 줄이는 데 쓰시기 바랍니다.

 
1. 스크린을 보는 시간을 제한하라고 전문가들은 촉구한다.

3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스크린을 차단해야 한다. – 미국 소아과학회

스크린의 신기함이 도파민을 분비하게 한다. 이는 스크린 중독과 집중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 – 시그만 박사

  뉴욕타임즈 기사 원문보기(2011.10)

  BBC기사 원문보기(2011.10)

  베스트베이비 한글기사 보기(2008.7)

 

2. 기술이 학교의 수업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가?

2012년 교과부가 스마트교육을 시범사업으로 시작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태블릿을 나눠주고 수업을 한다는 것이었죠.

ICT교육에서 컴퓨터를 태블릿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기재부에서 타당성 부족으로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컴퓨터를 활용한 교육, 얻는게 많을까요? 아니면 잃는게 많을까요?

 뉴욕타임즈 기사 원문보기(2012.11)

9NEWS(2013.5.20)

 

3. 컴퓨터를 가르치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학교

구글, 페이스북, HP등 세계적인 IT기업이 밀집한 실리콘 밸리에 있는 이상한 학교를 소개합니다.

왜 세계적인  IT기업의 임직원들은 컴퓨터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것일까요?

  뉴욕타임즈 기사 원문보기(2011.10)

  관련 한글 기사 보기

 

4. 버튼만 누르면 해결되는 놀거리와 영혼의 건강

발도르프교육에서 미디어, 전자식 장난감을 바라보는 관점과 교육의 방향을 소개하는 자료로 이전에 작성한 블로그입니다.

  블로그 보러가기 

 

나는 학교에 많은 컴퓨터를 보급하는데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키워주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컴퓨터는 사람이 하는 방식으로 호기심을 키워줄 수 없다. 새로운 발견을 위한 요소는 도처에 널려있다. 컴퓨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신의 반열에 오른 고 스티브 잡스의 말입니다.

2013 한국 인지학 컨퍼런스를 열며

 

2003년부터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지만 꽤 잘사는 국가,

2010년 이후 청소년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로 떠올랐지만

교육열이 제일 높은 국가,

대한민국에 당신은 살고 있습니다.

‘1’ 이라는 멋지고 화려한 숫자 너머에서

아이들은 오늘도 빛을 찾아 헤매이고 있습니다.

 

부와 화려함으로 가득 채워진 사회,

소유와 소비가 지배하는 일상,

바깥으로 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는 정보와 자극의 무게로

아이들은 바로 서 있는 것 조차 힘겨워 합니다.

 

2013년 4월 25일,

‘인지학에서 바라본 사회적 치유’라는 주제로 열릴

<2013년 한국 인지학 컨퍼런스>는

우리 시대의 아픔에 대한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 묻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인지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건강한 어른,

당신을 초대합니다.

 

컨퍼런스 등록하기

 

 

2013 한국 인지학컨퍼런스 포스터

2013 한국 인지학컨퍼런스 포스터

 

 

배움의 도구로서의 연극

푸른숲발도르프학교 11학년, 졸업연극 초대장

작년 이맘때쯤 학교 게시판에서 11학년 졸업연극 초대장을 보았다. 주제가 가볍지 않았다. 이제 18살을 넘긴 아이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지, 맡은 배역을 어떻게 소화해낼지 궁금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동반할 수 없었던 터라 내 궁긍즘을 풀지는 못했다. 우리는 연극을 통해 오랜 작업의 결과만을 보게 되겠지만 연극을 준비한 학생들에겐 그 과정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오리라 확신한다. 그러한 과정이 아이를 한층 더 성숙한 존재로 만들게 될 것이다. 발도르프 교육이 지향하는 목적 중의 하나인 사고, 감정, 의지의 통합을 이루어 내는데 연극보다 훌륭한 수단은 없다고 한다. 배움의 도구로서의 연극, 발도르프교육의 중요한 커리큘럼으로서의 연극을 정리한 글을 소개한다.

*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육소위 번역팀에서 번역한 자료입니다.

Drama, a Tool for Learning 배움의 도구, 연극

   대부분의 우리들 부모세대는 연극을 하나의 여흥거리로 생각하며 자랐다. 연극 자체는 슬프거나 심지어 비극적일지라도, 그러나 공연장 가는 일은 주로 일상의 ‘심각한’ 일을 끝내고 난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즐길 수 있는 그런 일정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연극의 본질적 의미는 드라마가 시작 된 아주 초창기부터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변화시키는 그 힘에 깔려 있었다. <오이디푸스 렉스>를 보러 갔던 그리스인들은 오이디푸스의 ‘오만함’(hubris)을 단지 무대 밖에서 관전한 것이 아니었다. 오이디푸스 안에 구체화 된 자기 자신들의 ‘오만함’을 보았고 오이디푸스가 자아를 죽이고 자만심을 지혜로 변형시켰을 때 관객들 역시 그렇게 변화되었다. 오늘날 어떤 연극이나 영화가 감동적이었다는 말 속에도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이 되어 극장문을 나섰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연극이 성인들에게 ‘변화’의 힘을 제공한다면, 아이들에게는 ‘형성’하는 힘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아이들은 아직 완전한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연극이라는 경험은 아이들의 성격을 형성해 주고 보다 직접적으로 그들의 혼을 불러 일으켜 준다. 성인인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재발견할 필요가 있지만,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게되는 아이들에게 있어 연극은 자신의 혼이 지닌 잠재력을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연극의 많은 요소들이 아이들의 자각능력을 높여준다.

연극에서 배우는 타인의 관점에 직접적으로 놓이게 된다. 배역을 맡은 아이는 그 등장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발견하고 그 경험이 그 아이로 하여금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연극은 단순히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 것에서 얻을 수 없는 방식으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등장인물과의 거리는 책을 읽을 때보다 배우가 되어 연기할 때에 훨씬 짧아진다. 이야기를 듣거나 들려주는 것이 우리의 사고에 머무르는 반면, 연극은 우리 몸 전체를 끌어들여 이야기를 감정과 의지에까지 확장시킨다. 특히 아직 아이들 스스로가 자기 느낌과 감정을 충분히 찾아내지 못하는 저학년 시기에서, 연극은 타인의 느낌들을 탐험하고 쑥쑥 자라나는 자신만의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등장인물은 배우에게 감정을 “주는” 것이다.

또한 어떤 역할을 익혀서 무대로 가져가는 것, 다시 말해, “연기를 하는 것”은 의지를 위한 실험대가 된다. 학생은 배역을 연기하며 자신의 의지를 투여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한쪽으로는 조절되고 짜여진 맥락 안에서 기존의 감정들을 마음놓고 표현할 수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감정이 다치는 일 없이 몰랐던 새로운 감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피상적이지 않은, 충실한 감정으로 다가서는 새로운 방법을 탐험할 수 있다.

지도교사는 딜레마에 처한 배역을 통해서 아이들이 지니는 격한 감정과 문제행동을 지도해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 경우 아이의 지적인 주의력에 호소 하거나 직접적인 분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도가 가능하다. 추상적인 생각과 원칙들이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 되어 질 수 있다. 이런 구체적인 경험은 극 속의 주제를 아이의 몸과 감정 속으로 끌고 간다. 그리하여 손과 가슴은 머리를 돕고, 이 세가지가 하나의 경험 속에서 짜여져 아이에게 힘을 주고 배움을 제공한다.

이렇게 연극을 통해 발도르프 교육의 필수적인 목적 중 한 가지가 달성된다. : 사고, 감정, 의지의 통합.이런 이유로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몇 권의 책으로, 혹은 일부 관심 있는 아이들만의 동아리활동으로 연극을 접근하지 않는다. 연극은 교과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학급 전체를 위한 것인데, 그 어느 활동도 그만큼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아이 성격의 다양한 양상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극 작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또한 학급의 역동적인 관계에도 기여한다. 공연을 마치며 얻는 성취감이 자부심을 공유하게 하고 그로인해 반 아이들 사이의 유대감이 강화된다.  발도르프 교육이 그러하듯이, 연극 주제가 학급의 발달단계를 반영할 때에 ‘연극’은 아주 유익한 사회성 실험장이 된다

발도르프 학교 연극에서는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모든 아이들에게 동작과 대사가 주어진다. 연극은 개개인의 모든 아이들을 독립된 하나의 혼으로 그리고 한 사람의 사회적 존재로 자리매김해 준다.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조금씩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공연을 통해 얻은 자각과 자기조절을 통해 궁극적으로 아이는 삶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아이의 운명은 현재진행형인 인류의 연극무대에 등장하는 신들이나 영웅들의 운명만큼이나 각별하고 예측하기 힘들며, 그러나 보편적이다.

아이의 기질을 마음에 품을 수 있다면

발도르프교육에서 말하는 네가지 기질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5세~14세 사이 아이들에게는 한두가지 기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이의 기질을 알고 그 특성을 이해한다면 아이들을 돌보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고 쉽게 읽히도록 번역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보니 큰 아이 K는 여름(담즙질), 작은 아이 J는 봄(다혈질)의 아이인 것 같네요.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육소위에서 번역한 글입니다.

기질, 아이를 이해하는 열쇠

Role of Temperaments in the Life of a Child

 Rene Querido (강연록에서)

  아이들의 세계는 경이로움과 창조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분석하거나 기계화할 수 없는 세계인 것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매우 실용적이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내면에 관심을 둡니다. 모든 아이들, 심지어 같은 부모, 같은 환경 아래에 있는 아이들조차도 다 다릅니다. 한 아이의 본성을 어느 누구도 엄밀하게 생물학적으로 설명해 낼 수는 없습니다. 아이 하나 하나는 고유합니다.

아이가 과연 무엇인지 더 깊이 파고들면 이 점은 더 분명해집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 속에 고유한 영(spirit 靈)이 육화된 것으로, 부모는 지상에서 이 아이의 삶을 받아들여 안내합니다. 아이의 유전적 특성은 환경으로부터 온 자극들과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기질(temperament)은 자아의 영적인 면과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결합된 것입니다. 즉 기질은 영(spirit 靈)과 유전이라는 두 줄기가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spirit 靈)과 유전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이어지는 기조(mood)의 변화에 주목해봅시다. 이러한 기조의 변화는 여름의 타는 듯한 더위, 가을의 쇠락과 죽음, 겨울의 얼음과 눈, 봄의 환희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기조들을 색상환(color circle)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파랑은 겨울 즉 얼음처럼 차갑고 축축한 기조입니다. 봄이 시작되는 파장 속에는 많은 층의 초록이 등장합니다. 여름의 기조는 빨강인데, 태양의 힘과 열기를 연상시킵니다 여름이 지나면서 우리는 안으로 움츠러들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은 느려지고 죽어가는 듯이 보입니다. 뭔가를 상실한 것처럼 느끼기 시작합니다. 많은 것이 죽고, 우리는 생명이 어디서 다시 생겨날지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의 기조는 계절과 연결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여름 아이들입니다. 여름에 태어나서가 아니라 이 아이들의 몸짓과 특징들이 여름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 아이들은 불 같고, 겨울 아이들은 물 같습니다. 가을 아이들은 땅에 발이 묶여 있는 반면, 봄 아이들은 가벼운 공기 같습니다. 기질은 다섯 살에서 열네 살 사이에 매우 두드러지고 그 이전에는 덜 뚜렷합니다. 초등학교 시기에 기질은 실로 중요한데, 교사들에게는 개별 아이는 물론 학급 전체를 이해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기질은 세계에 대해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데,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보기 때문입니다. 가을 [우울질 Melancholic] 아이는 매우 빨리 키가 크고 머리를 숙이고 발을 질질 끌며 걷습니다. 여럿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냥 보고 있을 거야. 이쪽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공을 가지고 놀다니 참 재미있는 녀석들이군.”하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은 이미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이해하려 하고, 많이 곱씹어 생각하고, 구경꾼이 되어 세상이 흘러가게 놓아 두는 것을 좋아합니다. 파티를 하자고 하면 “안 해. 난 파티 싫어. 혼자 모형 만들기 하는 게 더 낫지. 방문 닫아 버려야지.”라고 말합니다. 열 두 살 무렵에는 “여기 들어오는 걸 포기하세요. 여긴 지옥으로 가는 입구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푯말을 방문에 내걸지도 모릅니다. 혼자 있고 싶어하고 존재의 가장 밑바닥을 파고들고 싶어합니다.

우울질 아이는 교사에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만약 교사가 삶의 의미에 대한 자신의 질문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나는 심각한데 선생님은 내 질문에 관심이 없어. 그렇다면 나 혼자 간직하는 수 밖에.” 삼사십 년쯤 후에도 2학년인가 3학년 때 자기가 한 질문에 대해 교사가 “허튼소리 좀 집어치우렴.”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그것 때문에 시달리겠죠. 다소 과장한 면이 있지만, 우울질 아이의 기조를 이해한다면 이런 기조가 아이의 혼(soul)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울질 아이는 매우 직관력이 있으며 사물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들고 싶어 합니다. 이해하려 하고, 문법과 의미, 구조, 원리를 아는 것에 매우 관심이 있습니다.

봄 [다혈질 Sanguine] 아이들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이들은 근심 없이 속편하고 재빠르며 잘 웃고 유쾌합니다. 빨리 배우고 엄청나게 열광하지만 다음날 “어제 우리 뭘 했지?”하고 물으면 “기억은 안 나지만 아주 재미있었어요”하고 말합니다. 봄 아이들은 봄 아침의 햇살처럼 밝고 꽃과 나비, 벌레들을 사랑합니다. 이 아이들은 땅에 발이 거의 닿지 않게 다닙니다. 그래서 쉴새 없이 뛰어다니는 이 아이들의 신발은 다른 부분에는 구멍이 날 망정 뒤축은 거의 닳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발끝으로 다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의 삶은 경이로운 속도감을 지닙니다.

다혈질 아이들 역시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예고 없이 친구의 집을 방문했는데, 다혈질인 친구의 딸이 나와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랑 아빠는 고모 병문안 가셔서 지금 집에 안 계셔요. 고모가 떨어지셔서 많이 다치셨거든요. 그래도 들어오세요.”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아이는 아주 자세하게 가족의 역사에 대해 들려줍니다. 신나게 얘기하는 이 아이가 분명 귀엽기는 하겠지만, 아이가 떠벌린 것들에 대해 부모는 그다지 즐겁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우울질 아이는 혼자 시간을 보낼 것이고, 찾아온 당신에게 문조차 열어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낯선 사람은 엄마 아빠 친구일지는 모르지만 내 친구는 아니니까”라며 합리화 할 것입니다. 당신은 밖에 계속 서 있게 된 상황에 대해 황당한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여름[담즙질 Choleric] 아이들은 녀석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것을 알아차리기가 아주 쉽습니다. 틀림없이 들어서면서 문을 꽝 닫고는 쿵쾅거리며 “엄마”하고 소리칠 것입니다. 화가 나 있다면 아이의 태도만 봐도 바로 알 수 있고 뭔가 굉장한 일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것에 대해 얘기할 것입니다. “나 오늘 나무에 올라갔는데, 나무에 대고 못을 박았어” 같은 말이 바로 담즙질 아이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문장입니다.

담즙질 아이에게는 뛰어 놀 넓은 정원과 기어 오를 나무, 뭔가 쌓을 거리들이 필요합니다. 담즙질 아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 아이들은 상대하기 버거울 수 있습니다. 당신의 체력은 바닥나 가는데 아이는 점점 더 기운이 넘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요구사항이 많은 담즙질 아이는 조용히 신문을 읽고 싶어하는 우울질 아빠에게 대고 계속 물어댑니다. “내일 뭐할 거예요? 주말에는 뭐할 거죠? 산을 몇 개나 오를 건가요?” 아빠가 대답합니다. “그냥 집에 좀 있고 싶은데….. 이번 주는 정말 피곤했거든.”

담즙질 아이에게는 다혈질 아이와는 다른 종류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여름인 담즙질 아이는 불의 요소를 지니고,봄인 다혈질 아이는 공기의 요소를 지닙니다. 우울질 아이는 땅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가을과 비슷하고 매사에 심각합니다. 담즙질 아이는 항상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서 “내일 뭘 할거죠?”라고 말하고, 우울질 아이는 “휴가 간다고요? 삼 년 전 갔던 휴가만큼 좋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 정말 재밌었는데… 이번 휴가 정말 가려구요? 진짜 힘들고 별로일 거 같은데..”라고 말합니다. 우울질 아이는 기억하고 과거에 관심을 두고, 때로 아주 깊이 각인되기 때문에 마음에 오래 담아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다소 다부진 체격을 지닌 담즙질 아이는 맹렬한 기세를 지니며, 매사에 저돌적입니다. 반면 목이나 전체적인 체형이 좀더 긴 편인 우울질 아이는 손발까지가 너무 멀어서 행동으로 옮기기가 더 힘겹습니다. 하지만 담즙질 아이는 굉장히 따뜻하게 소통하고, 미래를 지향합니다.

다혈질 아이는 더 현재 지향적입니다. “지금 행복하면 다 좋은 거야. 그렇지 않으면 울거나 웃거나.” 기분이 금방 바뀌는 다혈질 아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피곤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혈질 아이는 현재 속에 살며, 자신이 당면해 있는 것에 끌립니다. 자기 기분보다 주변에 더 영향을 받습니다. 학교에 별일이 없으면 기뻐하고, 뭔가 잘 되지 않을 때는 매우 침울해 하기도 합니다.

겨울 [점액질 Phlegmatic] 아이는 물의 요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겨울 아이는 안락함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난로도 있고 별로 할 일도 없고. 밖에 눈이 점점 많이 내리네. 따뜻하고 좋다. 근데 뭐 먹을 거 없어요?“ 먹고 나서도 따뜻하고 편안하고 밖에는 계속 눈이 옵니다. “뜨개질 할래?” 아이는 계속 뜨개질을 하고 목도리는 점점 길어집니다. “그 정도면 목도리 길이로 충분하지 않니?” 제지하지 않는다면 목도리는 훨씬 더 길어질 것입니다. “너무 긴 것 같지 않니?” “그런 것 같네요. 그럼 하나 더 뜰래요.” 이 아이들은 반복을 좋아하고, 만족감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합니다. “뭘 좀 하지 그러니?”하고 물으면 “뭘 말이예요?”할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속지는 마십시오 깊은 물이 조용히 흐르는 법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아이들은 너무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에 때때로 가장 놀라운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폭풍우처럼 뭔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아이들의 감정은 놀랍도록 차분하고 평온합니다.

점액질 아이는 믿음직하고 충실합니다. 하지만 다른 기질들처럼 점액질 역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담즙질이 파괴적일 수 있듯이 점액질은 게으를 수 있습니다. 우울질은 자기 밖에 모르고, 다혈질은 깊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이의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종종 오해해서, 우리는 점액질 아이가 어떻게든 뭔가 하기를 원합니다. 담즙질 아빠와 점액질 딸 아이의 관계에서, 아빠는 느리고 친절하고 평화롭고 조용한 딸 아이가 뭔가 더 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점액질 아이에 대한 최악의 접근방식일 수 있는데., 아이가 아주 고집불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오히려 전보다도 더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부모는 “저 녀석, 도대체 뭐가 문제야? 항상 두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잖아. 재는 왜 그러는 거야?”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전보다 더 안 할거야. 벌써 밥도 먹었고 잠도 잤고… 난 여기 난롯가가 편하고 좋은데.. 그러니까 대꾸도 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되면 진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바꿔 놓는 것이 아니라 기질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울질을 다듬어서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혀진 우울질 아이에게서는 매우 열중해서 탐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울질 아이는 사물을 깊이 들여다 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울질을 이해하는 열쇠는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더 많이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최상으로 다듬어진 우울질 아이는 어떤 문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울질의 자기중심성은 몰두하고 탐구하고 믿음직하고 희생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점액질 아이는 게으른 경향이 있습니다. 많이 앉아 있고 먹는 것을 좋아해서, 움직이거나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게 힘듭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을 극복하고 점액질의 긍정적인 면을 북돋우면 믿음직한 아이가 될 것입니다.

다혈질은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와 흡사합니다 깊이가 없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세상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놓여 있습니다. 6세에서 14세 사이에 이런 다혈질의 성향이 적절히 다듬어지면 긍정적인 태도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다혈질 아이는 사회성의 본보기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영국 학교에서 가르쳤던 한 아이는 아침 등교길에 저에게 뛰어와서 재잘거립니다. “아무개를 위한 초는 준비하셨어요? 오늘 생일이잖아요. 아무개가 병원에 입원한 거 아세요? 들으셨어요? 어쩌구 저쩌구…”  교실로 들어갈 때까지 저는 모든 소식들을 다 듣게 됩니다. 저는 항상 이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이 아이는 학급의 사교활동에서 중심이었습니다. 파티나 나들이가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하면 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다혈질 아이는 조직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밖으로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깊이가 없고 산만해 보이는 것이 사회성 면에서는 자산일 수 있습니다.

담즙질 아이의 부정적인 면은 매우 부정적인데, 화를 폭발시키고 파괴적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담즙질 아이가 화를 내면 가족들은 벌벌 떱니다. 담즙질 아이가 교실 안에 있을 때는 뭔가 굉장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 아이가 결석을 하면 그날은 학급 전체가 여느 때와 조금 다른 분위기가 됩니다. 교사의 입장에서 담즙질 아이는 가시 같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종종 의문이 들고, 때때로 “이 녀석 진짜 한번 혼이 나봐야겠군”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항상 싸울 거리를 찾고 있는 담즙질 아이들에게는 이 아이들의 불덩이에 기름을 붇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담즙질 아이에게 다가서는 방식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나들이나 놀이를 계획할 때 담즙질 아이들을 한쪽으로 데려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어려운 걸 하려고 하는데… 진짜 어려운 거야. 너희가 이걸 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구나.” 담즙질은 쉬우면 흥미를 잃어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일단 도전정신을 북돋은 후 이 아이들에게서 협조를 끌어 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기꺼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담즙질 아이들의 지지를 얻느냐 못 얻느냐에 따라 이 아이들은 희생적인 지도자나 지지자가 될 수도 있고 독재자나 훼방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질과 싸우는 대신 기질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교사는 항상 교실 안에 아이들의 기질들에 부합하는 활동들을 배치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담즙질 아이들을 오른편에 두고 다혈질 아이들은 왼편, 출입문 가까이에 둡니다. 다혈질 아이들이 너무 소란스러워진다 싶으면 “이런, 분필이 다 떨어졌구나.가서 분필 좀 가져다 주겠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달려나갔다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는 수업의 상당 부분이 지나갔고, 이 아이들은 뭔가를 놓쳤다는 점 때문에 다시 집중합니다.

우울질 아이들은 칠판 가까이 교실의 어두운 구석에 두는데, 거기서 앞 쪽에 앉아 있는 재미있는 친구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재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재가 진짜 저걸 알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더 많이 알고 있겠지.” 점액질 아이들은 교실 뒤편 창문 가까운 곳에 둡니다. 구급차가 앵앵 소리를 내며 들어올 때 이 아이들은 “무슨 일이 난 건지 다 알아”하고 말할 뿐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다혈질 아이들이 창문에 줄줄이 붙어서 있을 지라도 말입니다.

기질들의 차이점에 대해 아주 극적인 방법으로 알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30명이 넘는 5학년인가 6학년 아이들의 학급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미술 시간을 위해 작은 의식을 한 후, 어떤 아이들은 종이를 나눠주고 다른 아이들은 종이를 물에 적셔 나무판 위에 놓고 스폰지로 닦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붓과 물감을 나눠줬고 모든 것이 다 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교실 한가운데 물이 담긴 큰 양동이가 하나 있고, 빈 양동이가 그 옆에 있었습니다. 조용히 그림을 그리다가 필요할 때마다 지저분한 물을 깨끗한 물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죠. 어느 금요일에 일이 터졌습니다. 커다란 물 양동이가 엎어진 것입니다. 엄청난 물이 쏟아졌고 온통 물바다가 됐습니다. 우울질 아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일어나서 물바다 속에 서 있었습니다. 다혈질 아이들은 곧바로 의자 위에 올라 서서는 소리쳤습니다.“와! 이게 뭐지?” 담즙질 아이들은 대걸레와 양동이를 가지러 달려나갔습니다. 점액질 아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믿기지 않겠지만, 그대로 의자에 앉아서 물 위로 발을 들어올렸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교훈을 얻은 순간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속편이 있습니다. 저는 담즙질과 다혈질 아이들과 함께 물바다를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이 아이들과 놀이를 했습니다. 아수라장을 정리하는 일은 점액질 아이들에게 맡겼고, 그 아이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20분이 걸렸지만, 말끔하게 치워졌습니다. 점액질 아이들은 놀라운 실용성을 가졌습니다. 우울질 아이들은 한동안 서 있다가 놀이를 함께 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치우는 일보다 놀이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보여준 다양한 반응들이 정말로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다른 예로 연극을 한다면 학생들의 기질에 따라 배역을 정해야 합니다. 담즙질 아이에게는 줄리어스 시저 역을, 다혈질 아이에게는 전령을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이 나서 소식을 들고 들락날락 하겠죠 우울질 아이들은 철학적인 역할을 좋아합니다. “왜 줄리어스 시저는 3월의 가운데 날에 암살당했을까? 좋은 면과 나쁜 면은 뭐였을까?”하고 물을 수 있겠죠. 점액질 아이는 연극의 중심에서 벗어나 앉아서 생각할 수 있는 역할을 좋아합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소식들이 빨리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영국처럼 변방까지 소식이 전달되는데 수개월이 걸렸습니다. 점액질 아이에게는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역할이 이상적입니다.

아이의 기질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다 보면 희극적인 부분은 우울질 아이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우울질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희극배우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예가 찰리 채플린과 마르셀 마르소입니다. 다혈질 아이는 멋지게 해낼 수 없겠지만, 훌륭한 구경꾼이자 모방꾼인 우울질 아이는 모든 몸짓과 기교들을 정확히 몸에 익혀 결과적으로 뛰어난 희극 장면을 연출해 냅니다.

역사, 지리, 과학 같은 수업에서도 기질을 고려해야 합니다. 셈하기의 경우에서 점액질은 덧셈 같이 거듭되는 활동을 좋아하고, 우울질은 뺄셈을 좋아합니다. 곱셈은 다혈질, 나눗셈은 담즙질에게 맞습니다. 3학년 때 사칙연산을 종합한 이야기를 활용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산을 발견하고 동시에 다른 연산들의 진가도 깨닫게 됩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아이들이 연주하고 싶어하는 악기가 기질마다 다릅니다. 담즙질은 북을, 다혈질은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우울질은 바순과 첼로를 좋아합니다. 점액질은 조율을 하거나 끼고서 할 필요 없이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서 언제든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같은 악기를 좋아합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음악교육은 리코더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개별 악기들을 배우고 연습하고, 결국에는 작은 오케스트라에 참여합니다. 어떤 악기가 아이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부모에게도 의견을 묻습니다. 주된 목표는 아이들에게 음악이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상담하면서 아이가 집에서 내보이는 기질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모든 기질은 다른 기질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섞여 있습니다. 색상환에서 이런 혼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오직 담즙질이나, 우울질, 혹은 다혈질이나 점액질에 해당된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입니다.(편집자 강조) 하지만 보통은 한 두 가지 기질이 우세한데, 이를 알아차려서 좋게 다듬을 수 있다면 아이의 삶을 보다 조화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기질, 말하자면 담즙질이 우세하다면, 아이를 진정시키고 더 자기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이 안에 우울질적인 어떤 것을 장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담즙질 아이는 일정 부분 다혈질이기도 해서, 다혈질의 활달함도 보여 줍니다. 반면 우울질 아이는 점액질의 물 같은 면뿐 아니라 담즙질의 불 같은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담즙질-점액질, 우울질-다혈질과 같이 완전히 상반된 기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기질을 얘기할 때 모든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다혈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혈질은 아동기의 기질입니다.모든 아이들은 경이로움과 세상을 탐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담즙질이 미래를 내다보고 우울질이 과거를 돌아보는 경향이 있듯이, 다혈질은 자기 밖의 현재를 즐기고 점액질은 자기 안을 들여다 보는 방식으로 현재를 응시하고 싶어합니다. (”배도 부르고 잠도 잘 잤어. 그래서 지금 참 편해.”).

어떤 과목을 가르칠 때 우리는 이런 서로 다른 음영과 색 들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교실에서 우울질 아이들은 모든 아이들이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불현듯 알아차리고는 상황에 반응하는 다른 방식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다혈질 아이들은 우울질 아이들이 항상 심각한 질문들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글쎄, 난 심각한 질문 같은 것도 없고 행복해. 하지만 ‘만약 이러면 어떨까’하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네.”하고 생각합니다. 교실 안에서 공감(empathy)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울질 아이들은 다혈질 아이들이 얼마나 활동적인지를 보고는 그들의 활기에 놀라워합니다. 학급 안에서 상호보완적인 활동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6~14세 시기에 아이들은 다른 기질들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각각의 개인이 될 준비를 합니다.

십대들은 자신의 다듬어지지 않은 기질을 더 이상 계속 가져가기 힘들다고 느끼는 시기에 접어듭니다. 이들은 스스로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느낍니다. 노련한 담임교사는 이들의 기질을 알아보고 조화시키도록 돕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루돌프 슈타이너는 초창기의 발도르프 학교 교사들에게 어둠 속의 배관공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슈타이너는 교사들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이 기질들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사이자 학부모로서 이 네 가지 기질들을 마음에 품을 수 있다면 세계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자신의 기질이 아닌 다른 기질의 시각으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색상환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파랑 안에만 살고 있으면 연두 빛에 대한 개념을 가지지 못하고 황폐해지고 말 것입니다. 부모와 교사로서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비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질을 고려함으로써 다른 특징들을 조화시킬 수 있도록 아이를 이끌 수 있습니다. 상급 학년에서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이런 접근에 대해 토론하고, 아이들은 기질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학교 문을 나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각 발달단계에 있어서 아동의 혼(soul)과 개별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정신과학의 새로운 걸음입니다.

정형화된 양식(pattern)에 따라 삶을 지배하기를 원하기는 쉽지만

삶은 어떤 양식으로 다루어지는 것을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통찰력(insight)만이 충분하다.

인간의 개별성에 대해, 전 생애 안에 존재하는 개별성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어떤 감정으로 변형되는 통찰력이다.

–  루돌프 슈타이너  –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외국어를 어떻게 가르칠까?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외국어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외국어 자체가 다른 세계의 문화이자 그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어 교육에 대한 접근방식도 제도권교육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에 입학하면 기본적으로 2가지의 외국어를 배우게 되는데 배움이라기 보다는 언어생활에 노출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인지학에서는 인간이 가진 감각이 12가지라고 봅니다. 그중 특이한 것은 ‘언어감각’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감각은 10세 전후로 절정을 이루고 점점 퇴화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학이전에는 철저하게 모국어만 익힐 것을 강조합니다. 학교에 입학한 후 다양한 언어에 노출되는 것은 외국어 습득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시기를 지나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며, 각각의 언어가 지니는 고유한 특성을 분별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 발도르프 교사는 외국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푸른숲발도르프학교의 교사였던 신일섭 선생님이 번역하신 글을 공유합니다.

발도르프 교사들을 위한 창의적 외국어 교육방법
A Creative Approach to Foreign Languages for Waldorf Teachers by Rene M. Querido

▷▷▷ 번역: 신일섭

외국어는 발도르프 교과과정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주요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일주일에 세차례에 걸쳐서 두가지의 상반된 외국어에 아이들이 노출되기를 원했습니다.

외국어 학습은 상당부분을,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재능인, 모방을 하면서 배우는 음악적 능력에 의존합니다. 비록 이빨이 자라면서 이 재능들은 점차로 사라지게 되지만,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이 천부적인 재능을 여전히 가장 창조적인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외국어를 잘 하게 될 수 있는가는, 저학년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말로써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외국어에 푹 빠질 수 있나로 상당부분 결정 됩니다.

외국어 수업이 진행되는 45분간은 그 나라에 온 것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모국어는 단 한마디도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수업 시작 때 “Good Morning, Children! How are you today?” 라는 선생님의 인사에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함께 대답하며, 이 대화는 날씨에 관한 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생활 외국어가 끝나면 함께 발음연습을 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한 단어, 두 단어, 혹은 세 단어까지 진행할 수 있으며, 점차로 한 주, 두 주, 그리고,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전체 목록이 형성됩니다. 이 단어들을 함께 합창하거나 개별적으로 연습하면서 3~4분이 지나가게 됩니다. 이어서 아이들은 모두 일어나 율동을 포함한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이 노래들은 재미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노래의 의미가 아니고 혀를 꼬부라트리는 것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아이들은 시 낭송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음악적 분위기가 강조됩니다. 아이들을 위해 재미있게 만들어진 짝짜꿍 스타일의 시가 아니라 위대한 명시가 선택되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도 아이들에게 천재 시인들의 훌륭한 시들이 소개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아이들은 말로써 구전되어 가슴으로 기억한 다양한 여러 위대한 시들을 자기 것으로 축적해 나갑니다. 이것은 커서 어른이 된 후에도 인생에서 소중한 보물로써 이어질 수 있으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해당 언어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발달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시를 다룸에 있어서 따라하기 힘든 발음이나 문법에 촛점이 맞추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전혀 예술적 교육이 아닌 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말로써 전달되는 방법을 통해 그 외국 언어가 주는 분위기로부터 충분한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통역이나 번역도 필요 없습니다. 칠판을 이용한 그림과 생생한 외국어의 말함과 들음을 통해 전반적인 의미는 충분히 전달 될 수 있습니다.

수업 중에 교사로부터 받은 수업 내용을 한국말로 간단히 말해보라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시를 가지고 수업을 할 때, 교사가 사전에 시를 잘 암기하고 있다가 감정을 실어서 열정적으로 암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교사는 한번에 몇 줄씩만 반복해서 암송하며 매 수업 5분에서 10분정도를 보낼 수 있으며, 전체 아이들이 합창으로 암송할 수 있고, 개별적으로도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합니다.

★ 저학년 (The Early Grades)

일학년부터 삼학년까지 쓰기는 없으며 모든 수업은 말로써 이루어집니다. 어떤 외국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학년에서 시 낭송외의 남는 시간의 대부분은, 사계절, 낮과 밤, 돌과 식물 동물과 같은 자연의 모든 것들, 신체의 각 부분, 시간 말하기, 여러 활동이 있는 그 날 하루의 일정 등등을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는 방식으로 채워집니다.

이 내용들은 무언극이나 연기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이 듭니다’, ‘잠에서 깨어납니다’, ‘눈을 뜹니다’, ‘침대에서 나옵니다’, ‘세수합니다’, ‘옷을 입습니다’, ‘가족들과 아침을 먹습니다’ 등등의 내용과 관련하여, “무엇을 먹나요?”, “무엇을 입나요?”, “학교에는 어떻게 가나요?” 등의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사는 여행용 가방을 가져와서 긴 여행을 떠날 때 챙겨야하는 각종 물건들을 풀어놓기도 합니다. 3학년의 집중 수업 시간에 이루어지는 쇼핑하기, 시간 말하기, 그리고, 다른 교육 내용들을 외국어를 가르칠 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외국어 수업의 주된 활동은 말하기, 암송하기, 노래 부르기, 게임하기 등으로 구성되지만,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시점을 잘 포착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포크송을 노래하고 율동이 포함된 여러 노래들도 주된 역할을 합니다.

독일어든 영어든 일어든 모두 다 마찬가지로 가장 아름다운 시들을 고르시기 바랍니다. 7세나 8세 아이들과 같이 어린아이들에게 괴테나 쉴러의 명시를 소개해주는 일은 정말로 큰 기쁨이자 풍부한 양식이 될 것입니다. 위대한 시인들은 언어의 창조자이며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수를 표현합니다.

외국어 수업은 교사가 수업에 상당한 다양성을 부여하고, 동시에 교사가 형성한 틀이 매번 반복되더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도록 해야만 가장 효과적이고, 훌륭한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일어서거나 앉거나, 책상을 옆으로 옮기거나, 원을 만들고 교실 세팅을 다시 한다거나 하다가 다시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충분히 많은 다양성을 만들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언어의 활동적인, 또는 정적인 요소들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덜하지만, 1학년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정확히 표현하거나 똑같이 다시 기억해내지 못하더라도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합니다.

아름답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대충 대충하는 발음은 절대 피하여야 합니다.

★ 중간 학년 (The Middle School)

4,5,6학년이 되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합니다.

서서히 이전 학년에서 배운 시와 이야기, 그리고 대화들을 쓰기 시작하게 됩니다. 중간 학년의 주된 과제는 쓰기를 통하여 읽기를 배우는 것이며, 또한 이전 학년 때 살아있는 언어를 말을 통하여 익힌 살아있는 언어를 받아쓰기나 묻고 답하기를 통해 익히는 것입니다.

이제 서서히 동사(행동 단어)를 시작으로 문법이 소개되어 집니다. 동사의 활용도 리듬있게 암기하면서 배워 나갑니다.

“I am, You are, He is, She is … 짝짝 ….”

박수나 발 구르기 등의 적절한 동작들이 사용됩니다. 언어의 의지가 표현되는 동사로부터 서서히 보다 추상적인 명사(이름 등)로 진행되고 차츰 감성이 표현되는 형용사와 부사로 나아갑니다.

교과서를 사용해서 문법을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수년간에 걸쳐서 가장 단순한 규칙과 연습을 통해서 가장 복잡한 것들도 다루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문법은 모국어를 다 익힌 뒤, 1년 후에 가르치면 됩니다. 교사들간의 협력을 통하여 이러한 부분을 잘 조율할 수 있습니다.

문법은 항상 구두로 이루어지는 말과의 생생한 관계 속에서 수업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문법이 외국어 이해를 위한 틀을 제공할 수 있지만, 너무 조기에, 또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면, 생활 언어와의 관계를 소멸시킬 우려도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이런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되면서 외국어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시와 노래, 발음 연습 등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중간학년에도 계속 이어지며, 인쇄된 책도 소개되어집니다. 4학년 말경에는, 학생들이 칠판이나 자신들이 직접 만든 교과서들을 통해서 유창하면서도 정확하게 읽고 아름답게 글을 쓰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보고 쓰기는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하여 맞춤법이 강화되고, 몇 가지 어려운 문법들에 대해 관심이 집중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가르치는 외국어의 이질적인 부분을 즐겁게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속담이나 관용어구, 그리고, 단어의 어원 등이 사용되면서 수업에 유머와 양념의 역할을 하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공식적인 수업 내용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전설이나 민화(民話)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으며, 5, 6학년 때는 역사적 일화를 이야기 해 주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칠판을 사용하거나 직접 마임(익살극)을 하면서 생생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전달됩니다. 되도록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며,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준 이후, 교사는 아이들이 주요 내용을 이해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로서,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게 되는데, 이때에는 보다 정교한 형태로 단어와 관용적 표현의 주요 포인트를 다루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로,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교사에게 되돌려 이야기 해 주기 시작할 것이며, 교사는 이야기의 첫 구절을 칠판에 써 놓음으로써 진행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야기는 점점 아이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며,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어 집니다. 이 이야기는 문체, 문법, 질문과 답변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으며, 글로 써서 그것을 보고 연기를 하는 짧은 희극의 기초 대사가 될 수 있습니다.

6학년이 지나며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 주는 것의 중요성이 점점 증가되며, 7학년, 8학년, 9학년이 되면서 읽기와 함께 교과과정의 핵심 부분이 됩니다. 외국어 담당 교사는 아이들이 주요 수업 시간에 받는 역사와 지리학을 활용하여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6학년 때의 로마 역사, 중세시대, 7학년 때의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8학년의 프랑스 대 혁명, 9학년의 근대사 등등이 있습니다.

5, 6학년 때부터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우는 외국어가 사용되는 나라의 지리와 친숙해 져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그리고, 수업은 항상 외국어로만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해당 나라의 지리와 친숙해져 있는 상태는, 그 나라의 관습, 사람들, 민화(民話), 그 나라의 고유의상, 음식, 전설, 산업, 자원 등의 구체적인 부분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때 즈음이 바로 아이들에게 프랑스의 치즈, 포도주와 샴페인, 향수 등에 대해 소개해 줄 적절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투리에 대한 몇 가지 예를 선보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스페인어를 가르친다면, 춤, 음악, 성당, 스페인 사람들의 성향과 옷차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생생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주의할 사항은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오디오나 영상 매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며, 이들 매체 대신에 교사는 아이들과 의 살아있는 창의적 관계에 의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고등학년 (High School)

시로 시작해서 짧은 이야기로 이어지고, 나아가, 소설과 연극으로 전개되는 언어의 다양한 문학적 보고는 계속해서 학생들에게 제공될 것입니다.

9학년, 10학년, 11학년, 그리고, 12학년에서는 잘 선정된 문학적 교과 과정이 확립되어야 하지만, 그 이전의 저학년 때부터 잘 확립된 기본적인 말하기, 읽기, 쓰기, 받아쓰기, 그리고, 회화가 없이는 계속적인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고등 과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이 유용할 것입니다.

9학년에서 우리의 젊은 학생들은 그들의 발달 단계에 있어서, 흑 아니면 백의 단계에 있으며, 희극과 비극사이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합니다. 독일 문학에서는 젊은 쉴러와 젊은 괴테로 대변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소개해 줄 수 있습니다. 프랑스 문학에서는 프랑스 대 혁명을 다루거나 빅토르위고, 앙드레 쉐니에르 등이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맞습니다. 알프레드 드 비니, 발작 등의 짧은 이야기들과 빅토르위고의 ‘레미제라블’,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에서 발췌한 글이 제일 유익합니다.

이 9학년에게는 유머를 곁들인 희극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수업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또한, 학생들의 지적능력이 점점 성숙됩에 따라 언어의 구조와 문법을 복습하여 확고하게 정착시켜야 합니다.

10학년 때는 낭만주의가 청소년의 삶에 중심적인 부분을 차지합니다. 교사는 서정주의에서 몇 가지 예를 선택하거나 언어의 역사적 측면을 다룹니다. 학생들은, 생생하게 전달만 된다면, 어원이나 언어의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보다 의식적으로 언어의 특징을 즐기기 시작하게 되며, 교사가 라틴어나 그리스어, 그리고, 기타 다른 언어들로부터 좀 더 유사한 예들을 보여주게 되면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11학년에서는 이제 연극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학생들은 졸업전에 라신, 코르네이유, 몰리에르의 차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대 시대(Le Grand Siecle):루이 14세”를 주요 프로젝트로 삼을 수 있고, ”트루와이(Chretien de troyes)”로부터 짧은 이야기를 빼와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독일 문학에서는 괴괴테와 쉴러의 희극을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단, 파우스트는 12학년까지 미뤄두는 것이 좋습니다. 추가로 볼프락 폰 에센바흐와 다른 독일 음유시인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중요한 수업 내용으로, 내적인 둔함으로 인해 너무나 중요한 질문을 하지 못하는 파시발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11학년 때입니다.

이 11학년 학생들은 음악의 역사에 관해 공부하기도 하는데, 외국어 교사는 이를 외국어 수업에 활용하면서 일반 수업시간의 여러 내용들을 자신의 수업 내용을 만들어 가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당 국가의 위대한 작곡가로의 삶을 다룰 수 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베를리오즈, 쇼팽, 드뷔시, 독일의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등등…
12학년에서는, 특히, 현대 문학이 강조됩니다. 불어를 배우는 아이들은 알베르트 까뮈, 앙투안 생떽쥐페리, 아누이, 이오네스코 등을 다루고, 독어의 경우는 막스 프리쉬, 튀렌마트, 볼프강 보르체르트, 하인리히 벨, 그리고, 기타 여러 문인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특정 분야에 대한 자신들의 연구 조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격려해 줍니다. 어떤 학생들은 특정국가의 정치 상황, 사회적 조건, 정부와 사법 시스템에 대해 말해보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외모를 비교해 가며 심리학적인 특징을 연구 주제로 택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학생들은 어떤 지방의 공예나 산업에 관한 이야기를 발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반 아이들 앞에서 구두(외국어)로 발표되며, 각 학생들은 자신의 발표를 해당 언어로 수필을 만들게 됩니다.

지금까지에서 볼 수 있듯이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다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실용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날 많이 볼 수 있는 단순 기본지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곳으로 향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요?

언어는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므로 아마도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언어는, 또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독특한 정신, 개성, 음악성을 이해할 수 있는 관문이며, 매일 매일의 생활속에서 발생하는 끝없는 자기표현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언어는 유아기의 최초 2년 동안에 모방을 통해 아이의 안에서 탄생합니다. 제일 먼저, 아기는 기고, 걷는 것을 배우고, 손짓 발짓을 통해 모국어를 시작하게 되며, 세 살이 되면, 말을 통해 사고(think)의 희미한 빛이 최초로 반짝이기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사고방식은 우리가 말하는 언어에 의해서 결정되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게 되면, 또 다른 방식의 사고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언어는 각각의 사고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 개념과 단어들은 다른 언어로 번역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이 “J’ai raison (I have reason) : 내가 맞다” 라고 말할 때, 독일 사람은 “Ich have recht : 말 그대로 나는 권리가 있다” 라고 말합니다. 독일 말로 “내가 맞다” 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Weltanschauung”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사람(독일사람)은 전체적인 세계관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 할 것입니다. 영국 사람은 자신의 ‘유머감각’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또는, 삶의 방식’에 자부를 느낍니다.

독일어로 ‘wuber etwas nachdenken – 사고(think) 이후에 관하여’ 라는 말은 단어가 지향하는 방향이 전체를 구성하는 종합적 사고방식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영어의 ‘to think about’는 가능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주제 주위를 도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미묘한 언어별 차이점에서 잠시 벗어나, 보다 상징적인 예를 들면서 많은 부분이 번역을 하는 과정에 상실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tree(나무)’ 라는 영어 단어는 – 특히, 오이리트미(행위예술)로 표현될 때 – 독일어인 ‘baun’ 이나 불어인 ’arbre’와는 매우 다른 식으로 표현됩니다. ‘tree’ 라는 소리의 몸 동작은 줄기를 강조하는 반면, ’baum’ 의 경우는 무성한 나뭇잎을 더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으며, ‘arbre’ 의 경우는 프랑스의 길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바람에 휘청거리는 가느다란 고리버들나무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이 통역시 상실되며, 발도르프 학교에서 외국어를 가르칠 때는 언어의 정수를 재 포착하고자 하는 노력을, 서서히, 그 언어를 잘 구사하는 과정을 통해 기울이게 되며, 이를 통해 다른 나라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다른 사고방식, 삶에 대한 다른 태도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의 노력이 없다면, 많은 매혹적이며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게 되며, 또한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편견의 씨앗을 뿌리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때 배우는 동요와 시들로부터 시작해서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2개의 외국어 수업을 통하여 온갖 마음의 색들을 담을 수 있는 파렛트를 갖게 되며, 이는 인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앞당기는데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2개의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의 외국어는 보다 쉽게 다가오게 될 것이며, 우리의 내적 감수성의 역역은 확대될 것입니다.

각 언어는 오케스트라의 악기와 비교될 수 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지만, 동시에 한계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는 제안을 하거나 암시로 가득차 있고 부분적인 질술로만 이루어진 행간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며, 독일어는 묘사에 뛰어난 장점이 있으므로 철학적 이야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항상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었다가 내포하고 있는 최고의 높이로 솟아오릅니다. 한편, 불어는 훈련된 찌르기로 한번에 관통해 버리는 창과 같이 높은 정확도를 가진 오류 없는 도구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모국어에 대해 보다 세세하게 알게 됩니다. 우리는 말, 산문, 시를 통한 표현에 있어서 모국어의 특별한 능력을 재 발견하게 됩니다. 4학년 때부터 서로 다른 언어 속에 있는 격언과 관용어 표현을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적절한 예제를 통해 조금씩 접하게 되는데,

“Er hat einen Vogel (그는 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 그는 미쳤다는 뜻” (독어)
“Elle a une araignee au plafond (그녀는 천장에 거미를 키우고 있습니다.) ->; 역시 미쳤다는 뜻” (불어)
“She has a bee in her bonnet. (그녀의 모자에는 벌이 있다.) ->; 미쳤다는 뜻 (영어)”

많은 재미있고 유머있는 이야기들이 수업을 통하여 소개됩니다. 또한, 역시 4학년 경에는 아름답게, 그리고, 노래를 부르듯 말하는 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아이들은 바르게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 뿐만아니라 언어의 아름다움과 음악성에 대한 존경심도 배우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 외국어를 배우는데 있어서는 심오한 사회적 관계의 측면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 사회적 연결에 대하여 그 어떤 교사보다도 외국어 교육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던 2명의 초창기 발도르프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콘라드 산트퀼러 박사와 헤르베르트 한 박사님입니다.

콘라드 산트퀼러 박사는 슈트트가르트에 있었던 최초의 발도르프 학교에서 수세기 동안 영어와 불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가장 학생들을 활기차게 격려할 수 있는 교수법을 사용했으며, 수개 언어에 능통했던 그의 지식으로부터 끝없는 예제들을 끌어내서 그의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제자들 중 많은 훌륭한 언어학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약 20여년 전에 파리의 생제르망 거리를 함께 걸으며 콘라드 산트퀼러 박사와 나누었던 긴 대화에 대한 즐거운 추억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불어로 프랑스 음유시인들인 트루바두르와 스콜라철학, 그리고, 고대 불어가 현대 관용어구로 발전되어가는 과정에 관해 의견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카페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누었던 이 활기찬 대화에 이어, 우리는 영어로 세익스피어와 영어의 진화, 현대 미국의 관용어구와 오늘날의 영어 어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독일말로 괴테와 쉴러 그리고 독일어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위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의 대화는 내가 지금까지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고 고무적인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다른 두드러진 언어학자는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와 함께 발도르프 학교의 창시자 중 한명이었던 헤르베르트 한 박사입니다. 그는 12개 국어에 완벽하게 능통하였으며, 말년에 저술한 “Vom Genius Europas”를 통해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 그리고, 독일인들이 그들의 언어와 사람들, 지리적 특성, 그리고, 삶의 방식등의 독특함을 가지고 유럽의 다양성에 기여한 것에 대해 논하였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대 업적은 불행히도 아직 영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저서 뿐만 아니라, 그는 외국어 교육의 실용적인 교수법에 관해 헤아릴 수 없는 조언들을 해 주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도 그에게서 특별한 혜택을 너무나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항상 구두 대화, 암송, 시, 회화 등을 강조하면서 언어의 계량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인지하는데 있어서 귀의 훈련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괴테를 배우면서, 우리는,

“금보다 찬란한 것은 무엇인가?”

“빛”

“빛보다 상쾌한 것은 무엇인가?”

“대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

버튼만 누르면 해결되는 놀거리와 영혼의 건강

요란한 장난감, TV, 게임기, 컴퓨터에서 스마트폰까지…

요즘 아이들을 쉽게 조종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이것들을 자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아이들은 통제불능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요? 공동육아, 대안학교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 공유합니다. 푸른숲발도르프학교의 교육소위에서 번역한 자료입니다.

[Family Life and Waldorf Education]

Push-button Entertainment and the Health of the Soul
버튼만 누르면 해결되는 놀거리와 영혼의 건강

Christopher Belski-Sblendorio

우리는 전자식 놀이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라디오, TV, 비디오, CD 플레이어, 오디오 카세트 플레이어, 비디오 게임과 CD-ROM이 구동되는 컴퓨터 등 많은 전자 기기에 둘러싸여 있다. 거의 매 순간 우리는 버튼만 누르면 놀거리를 이용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해 출근길 차 안에서, 점심 휴식 시간에, 저녁 식사 시간에, 잠들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수시로 버튼을 누르며 생활한다. 음악을 듣고 뉴스나 최신 일기 예보를 듣고, 자연 다큐멘터리나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여가를 즐기고 정보를 얻는다. 이것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버튼만 누르면 즐길 수 있는 놀거리에 들이는 비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주 적다. 아니,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자신이나 우리 아이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지 모른다.

한 가지 예로 우리 영혼이 소화불량을 겪고 있을 수 있다. 우리 몸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우리 영혼이나 정신은 감각 인상(*sense impression), 경험, 생각들을 먹고 산다. 몸이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 처럼 영혼 역시 자양분을 얻으려면 영혼이 먹는 음식을 소화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활동은 우리가 잠이 들어 더 이상 어떠한 상(인상)도 받아들이지 않는 밤에 일어난다.
* sense impression
Impression…인상(印象) : 어떤 대상에 대하여 마음 속에 새겨지는 느낌
Sense impression : 마음 속에 새겨지는 감각

버튼만 누르면 되는 전자식 놀이거리로부터 우리 영혼이 받게 되는 자극은 매우 강력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약 사흘간은 그 영화로부터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다. 어쩌다 밤 중에 깨었을 때 낮에 라디오에서 들은 광고음악이 머리 속을 계속 맴돌고 있는 듯 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엄청난 양의 강렬한 자극들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것은 내가 선택한 자극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마구 들어오는 자극이기도 하다. 쇼핑을 할 때 점포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는 노래나, 전화를 걸어 상대방을 기다려야 할 때 나오는 대기음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삶의 부산스러운 인상, 하루 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걱정, 밤잠을 설치는 일, 이 모든 것은 우리 영혼이 유행가나 영화, 상업 광고, 뉴스 보도 등 너무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소화불량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또한 이런 놀거리들에 끊임없이 노출돼 있다면 우리 영혼이 꼭 해야 할 사고, 감정, 의지라는 세 가지 활동이 어려워지게 된다. 실제로, 이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을 위협한다. 활기찬 내적 심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훌륭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훌륭한 상상력은 창의적 사고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문제를 풀 때 새롭고 독창적인 해결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또 훌륭한 상상은 우리가 다른 이들의 영혼의 삶(soul-life)으로 들어가 마치 그 사람이 된 것 처럼 삶을 경험하도록 하기 때문에 마음의 품이 넓어지고 너그러워지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이렇게 풍부하고 활기찬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상들(images)조차도 우리가 외부에서 받는 상들에 의해 그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외부의 상(images)과 생각들을 취하고 그것을 소화시키려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 공감 능력이 무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면서 무언가를 경험하고 깊고 진실된 감정들 – 기쁨, 두려움, 희망, 슬픔 –의 울림이 마음 속에서 일어날 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이 풍성해지고 영감을 받는다. 이런 영혼의 풍요로움과 함께 변함없는 깊은 만족과 평안이 찾아온다. 우리가 전자 놀이거리에 빠져 있다면 우리의 감정 생활은 상당 부분 부자연스러운,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상황에 반응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상’과 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의도적이고 교묘하게 외부에 끌려 다니며 조종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짜 사람과 진짜 삶 속 상황에 진정으로 반응하는 능력을 잃기 시작한다. 내적 평안을 잃고 우리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진짜로 살아있는 감각을 불어넣을 줄 더 많은 건강한 자극들을 원한다. 그런데 직접이 아닌 간접적인, 전자기기가 매개가 되는 경험은 이런 건강한 자극을 주지 못한다.

버튼만 누르면 바로 해결되는 놀이거리를 즐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수고의 전부는 고작 수동적으로 앉아서 받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의지를 활동시킬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의지는 위축될 수 밖에 없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일 앉아 TV만 보는 TV 귀신이 되거나, 전자기기 중독자가 되어 의지나 자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은 노래를 부르기도, 악기를 연주하기도, 그림을 그리거나 이야기를 풀어내고, 지적인 토론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직접 자기가 움직여서 ‘하는 것’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단지 눈으로 ‘보기만’ 한다.

물론 TV나 라디오 프로그램, 비디오, 음반 제작 활동에도 상상력, 영감, 자기 주도성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결과물의 어느 정도는 실제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감정 생활을 풍부하게 하고 긍정적인 행동으로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전자기기를 분별없이 사용한다면 우리 고유의 사고력과 정서 생활과 의지는 위협을 받게 된다.

버튼만 누르면 해결되는 놀거리의 영향력을 보고 싶다면 미디어 단식(media fast)을 해보아라. 미디어 단식을 즐겁게, 고통 없이 하려면 캠핑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일주일이나 그 이상을 일체의 전자 기기 없이 자연 속에서 조용히 보내며 당신의 영혼 생활을 청소해 보아라. 휴가가 새로운 기운을 북돋워주는 평온함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현실로 돌아와서는 습관적으로 혹은 단지 편리하다고 해서 버튼을 누르지 마라. 한 번 시험을 해보자. 의도적으로 몇 가지 놀거리를 택해서 그것을 꾸준히 이용하며 살펴보자. 그 놀거리들이 내 사고와 감정, 진취성과 같은 내적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자. 내 스스로 방향을 정했던 생각들이 영화나 뉴스 보도에서 나온 생각들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야영장 모닥불 옆에서 불렀던 옛 노래나 휘파람과 허밍으로 흥얼거렸던 노래들이 라디오나 광고 음악에서 나온 노래들로 뒤바뀌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특별한 요리를 준비한다거나 편지를 쓴다거나 산책을 나가는 일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전자 놀이감을 애용하고 우리 영혼이 소화불량에 걸리게 되면 우리 안의 영혼 생활은 물론 우리의 사회적 소통은 영향을 받는다. 다음은 괴테의 동화 ‘녹색 뱀와 아름다운 백합’ 중에서 금으로 된 왕이 뱀에게 질문을 하는 부분이다.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황금으로 가득 찬 골짜기에서 왔지요.” 뱀이 대답했습니다.

“금보다 고귀한 것은 무엇인가요?” 왕이 물었습니다.

“빛이지요.” 뱀이 대답했습니다.

“빛보다 상쾌한 것은 무엇인가요?” 왕이 물었습니다.

“그것은 대화 이지요.” 뱀이 대답했습니다.

인간의 대화는 아마도 가장 귀한 예술일 것이다. 하지만 전자식 놀이거리(push-button entertainment)가 있으면 인간의 대화가 끼어들 틈이 없다. 지난 추수감사절에 내 가족과 친구들이 어머니 집에 모였었다.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는 어머니 요리 솜씨에 찬사를 보내며 다양한 관심사를 주제로 활기 넘치는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은 옆방에서 TV에서 방송하는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봐도 될지 물어왔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후식으로 TV를 선택했다. TV 소리는 방해가 됐다. 하지만 어른들은 좀 더 크게 말하며 대화를 계속했다. 이야기 도중 공백이 생기거나 이야기 주제가 바뀌면서 틈이 나면 사람들은 퍼레이드를 보려고 TV 앞으로 갔다. 하나 둘씩 TV를 보려고 자리를 떠나 출입문으로 가 기대어 섰다. 그러다 결국 TV 앞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곧 대부분 어른들이 아이들과 같이 앉아 버리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대화는 광고가 나가는 동안 프로그램에 대해 몇 마디 하는 것으로 줄어들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곧 나는 깨달았다. 전자기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기 하나 때문에 진짜 사람의 소통이 밀려났다는 사실이 또 한번 슬펐다.

지금의 어른들 중 일부는 어린 시절 라디오가 없이 자랐다. 대부분이 TV나 (스테레오)음향기기가 없이 생활을 했고 이를 접했다 해도 그 시기가 적어도 유년 초기를 넘겨서였다. 오늘날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양한 전자 놀이기기에 둘러 싸이게 된다.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자라나는 상상력과 사고력, 침착성과 감정의 깊이, 자기 주도성과 내적 자유는 수동적인 놀이문화와 쉽고 빠른 정보에 희생되고 있다. 과연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자신만의 생각 세상을 경험하고 나만의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가 인생의 방향을 정할 수 있을까? 내 영혼의 내용물 중에 얼마나 많은 것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모든 부모와 교사가 중대하게 짚어봐야 할 질문들이다.

18년 간 교직 생활을 해온 나는 지난 10년간 전자 기기에 의한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봐왔다. 그것은 나은 변화가 아니었다. 아이들 앞에 실제 살아있는 교사가 CD-ROM 세상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이유로 교사의 역할이 점점 힘들어지게 되었다. 전자 기기를 가지고 놀고 있을 때 아이들은 소극적이고 조종되기 쉽다. 이런 아이들은 진짜 삶 속에서 겪게되는 상황이나 관계, 활동에 쉽게 불평을 한다. 아이들은 외부에서 얻는 즐거움을 더 좋아하게 되고 자기만의 놀이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거의 잃게 된다. 그 부정적인 영향은 어린 아이들에게서보다 십대에게서 더 많이 드러난다. 비판적 태도, 감상벽, 무기력, 중독성 행동 성향, 이 모든 것은 영상 매체 시대에 살고 있는 십대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전자 놀이기기가 우리에게 주는 위험을 꼼꼼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 세대들이 스스로 즐기고 놀고 터득했던 능력과 활동을 다시 끌어내올 필요가 있다. 퍼즐 맞추기, 퀴즈와 같은 실내놀이, 큰 소리로 책 읽기, 수공예, 바느질, 그림 그리기, 소묘, 노래 부르기, 악기 연주, 연극, 토론, 그 밖의 많은 활동이 마음에서, 가슴에서, 의지에서 나오고 마음을, 가슴을, 의지를 써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아이들이나 어른들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하고 또 충분히 가능하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은 아빠가 들려주는 책 읽기를 아니, 그보다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만들어 주고 함께 요리를 하고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그 밖에 집안 어른들이 계셔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아이를 위한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를 아이와 함께 부르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사람들로부터 직접 이러한 일들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전자 기기에 밀려 우리의 특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라디오, TV, CD, CD-ROM, 등은 우리 문명의 일부이고 우리 일상의 일부이다. 우리는 의식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피고 신중한 자세로 이것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 영혼의 건강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Media and Waldorf Educaion: 미국 Marin Waldorf  School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