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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 학교 보다 중요한 것

신입, 편입 학부모들에 대한 교육을 부탁받았다. 발도르프교육에 대한 확신이 점점 퇴색해 가는 요즘, 학부모들 앞에 서는 것이 옳은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많은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있을 신입 학부모들에게 다른 관점을 제시해 주는 것, 현실감각을 심어주는 것이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되어 수락했다. 학부모들과 공유한 내용을 이곳에도 올린다. 

 

– 슈타이너 학교 보다 중요한 것,  슈타이너의 삶 –

우리가 이자리에 모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각자 다른 배경, 다른 삶의 터전을 가진 사람들이 왜 연고도 없는 퇴촌의 작은 시골마을에 모이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푸른숲 발도르프학교에 아이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학력도 인정되지 않고, 좋은 대 학에 진학할 가능성도 희박하고, 심지어 비싼 학비에 사적인 시간까지 쏟아야 하는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이곳에서 4년의 시간을 보내고 파악한 우리 학교 학부모들의 공통점은 한가 지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입니다. 공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문제인식에 편차가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교육을 완전히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때가 되면 대부분 이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다 른 대안학교를 찾거나 홈스쿨링을 선택할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학 교를 아이를 위해 택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교육상품 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사실 입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 수록 과연 이 교육이 경쟁력이 있는지 의구심은 커져만 갑니다. 아주 오래전 부터 많은 교육전문가들은 떠들어 왔습니다. 미래의 경쟁력은 학 벌보다 능력, 지식보다는 창의력, IQ보다는 EQ, 혼자가 아닌 팀웍에서 나온다고 말입 니다. 알파고가 천재 바둑기사를 이긴 이후에 이런 주장에 더 힘이 실릴지도 모르겠습 니다. 세상은 분명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몇몇 나라들은 실 제 그렇기도 합니다. 올해 초 개최된 다보스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으로 2020년이 되면 세계적으로 일자리 70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일자리의 대부분이 사무직 노동자라고 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니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는 것이 옳은 선택 이라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들을 ‘삼포세대’라고 부릅니다. 연애, 결혼, 출산 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취업과 내집 마련을 포기한 ‘오포세대’, 인간 관계와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포기한 ‘칠포세대’라는 말이 회자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신입학부모교육 1 의 대한민국을 ‘헬 조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까요?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독점적인 기득권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발달로 인간의 일자리는 더욱 더 줄어들 것이 분명한데, 혹시 낙 관주의자들의 전망처럼 컴퓨터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주고 인간은 취미생활 을 즐기며 살아 갈 날이 도래할까요?

지금과 같이 자본의 이익이 궁극의 가치가 되는 사회에서 미래는 그리 낙관적이 지 않습니다. 발도르프 학교를 보낸다 해도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추구해 가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해소해주지는 못할 것 입니다. 설사 명문대학을 간다해도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일자리를 구한 다해도 학자금대출을 상환하느라, 집 월세를 내느라, OECD 국가 중 최장시간 노동을 감당하며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쯤에서 우리의 우상과도 같은 루돌프 슈타이너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 는 그를 발도르프교육을 창시한 교육자, 인지학을 창시한 철학자 정도로 알고 있습니 다. 저는 루돌프 슈타이너를 사회개혁가 또는 사회운동가로서 더 존경합니다. 인지학 을 창시하고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에 무관심했다면 지금처럼 유명해지진 않 았을 듯 합니다. 인지학의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 삶의 문제가 곧 사회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사회의 문제가 곧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지학을 토대로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많은 대안을 제시했고 또 한 실천으로 옮겨 왔습니다. 발도르프교육은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서 인간의 무지함, 이중성을 깨우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의지, 감성, 사고 가 고루 발달된 인간을 만드는 교육을 주창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은 국가로 부 터 간섭받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과 자연(우주)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시키는 농업으로 생명역동농법을 만들었고, 의학과 제약, 건축분야에서도 새로운 길을 제시하 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그의 고민과 실천이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한계에 도달한 정치와 경제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으며 특 히, 화폐가 가치를 축적하고 이익을 증식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진단하였 습니다. 그래서 유통기한이 있는 화폐의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또한 그가 주창했던 사 회 삼중구조론에 따르면 경제는 자유나 경쟁이 아닌 우애에 기반해야 한다고 했습니 다. 따라서 노동과 소득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신입학부모교육 2 ‘기본소득’ 개념도 이런 바탕위에 있는 것입니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주창한 사회개혁 론이 지지를 받게 되자 나치정권은 그를 암살하려 했고 결국 루돌프 슈타이너는 스위 스로 망명하게 됩니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1980년 독일에서 녹색당을 창당하게 되는데 이때 사상적 기반 을 마련한 이들이 인지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녹색당의 활약으로 신재생에 너지의 보급을 확대하였고, 메르켈 정부가 탈핵을 공론화시키도록 압박을 가하였습니 다. 결국 독일은 탈핵을 선포하였고 EU도 2050년까지 원전 90%를 폐기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현재 100여개 국가에서 녹색당이 활동하고 있으며, 공통적인 관심사는 ‘평 화’, ‘생태’, ‘남녀평등’, ‘탈핵’, ‘풀뿌리 정치’ 등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 주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저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사실, 그것만으로는 달라질게 별로 없습니다. 전국적으 로 대안학교 학생은 전체 학생의 1%가 되지 않습니다. 발도르프학교는 그중 일부입니 다. 우리나라에서 대안학교는 주로 사회의 관심 밖에 있으나 때때로 ‘귀족 학교’, ‘좌파 양성소’, ‘교육 사각지대’ 와 같은 이슈로 잠시 주목받을 뿐입니다. 이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아이들이 ‘자유로운 인간’의 반열에 오르면 좋겠으나, 우리의 모습, 우리 사회의 어른들 모습을 보십시오. 그 목표는 우리가 일생 동안 추구해도 이르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향점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시행착오와 성찰입니다. 슈타이너 학교가 중요한게 아니라 슈타이너의 삶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유가 필요한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세상의 변화는 나 자신의 변화로 부터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우선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내가 바 라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에 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 나눌 자료 :  ”세상이 계속 좋아질 것을 믿는 문명이 수명을 다했다”

http://www.huffingtonpost.kr/zeitgeist-korea/story_b_96150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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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발도르프학교 학부모의 약속

학부모의 약속

1. 우리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성원 사이의 민주적 합의 절차를 대원칙으로 합니다.
2. 우리는 학교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이행 할것입니다.
3. 우리는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소박한 삶을 실천합니다.
4.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친환경 먹을거리와 채소 위주로 밥상을 차립니다.
5. 우리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사랑하며 지향합니다.
6. 우리는 아이들에게 경쟁을 부추기는 오락이나 게임을 멀리하도록 합니다.
7. 우리는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멀리 하도록 합니다.
8. 우리는 푸른숲학교의 교육이념과 교육철학과 배치하는 사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9. 우리는 아이들이 자기 물건 챙기기, 청소하기 등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합니다.
10. 우리는 아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고, 고운말을 쓰고 먼저 인사를 하는 등 생활 속에서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입니다.
11. 우리는 아이의 성장 발달과 교육 활동을 담임교사와 상의합니다.
12. 우리는 가난, 여성, 생태, 교육, 전쟁, 고통받는 소수 등을 항상 생각하며 아이와 함께 나눔을 실천합니다.
13.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변화 발전 할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14. 우리는 어른의 삶을 보는 것 자체가 교육이다라는 명제에 따라 올바른 자녀교육을 위해 학교의 이념과 가치과을 존중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5. 학교의 여러 가지 모임에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이제 둘째 J도 푸른숲발도프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 주 학부모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습니다. 학부모가 된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난 터라 선생님들의 설명과 당부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학부모의 약속을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가니 부끄러운 마음이 점점 커져 갔습니다. 학부모의 약속 15가지 중에서 나는 몇가지나 실천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저 약속들을 지켜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런 저런 갈등이 생겨나곤 합니다.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 생활리듬이 불규칙적인 아이들은 수업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교실의 분위기는 흐트러지기 마련이겠죠. 학교에서는 친환경, 채식위주의 식단을 제공하는데 집에서는 씹기 쉽고 담백한 맛이 나는 육류나 가공식품을 많이 준다면 학교 급식이 맛있게 여겨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참고로 급식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분입니다. 주어진 식사를 다 끝내지 못하면 자리를 뜰 수 없답니다.) 청소나 물건 정리가 몸에 배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기 물건을 챙기고 청소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면서 아이에게 자유로운 삶을 강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다 보면 갈등이라는 것은 불가피한 것인데 이를 해소하는 과정이 자기 중심적이라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워 집니다.
결국 14번째 약속, 우리 교육이 추구하는 대명제 ‘어른의 삶을 보는 것 자체가 교육이다’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부모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더딜지라도 조금씩 변화해 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입니다.
저는 요즘 집에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합니다. 제가 가장 소홀했던 약속이 바로 7번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익숙하게 저런 기기들을 다루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저런 것들을 미리 가르쳐 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UI/UX의 발달은 컴퓨터에 무지한 사람도 쉽게 사용하도록 해주니깐요…

2013/12/20

푸른숲학교 저녁노을 2013/12/20

발도르프학교의 통지표

K가 1학년 과정을 마치고 긴긴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발도르프학교에서 첫 통지표를 받았다. 그런데 부모인 내가 왜 이렇게 설레였을까? 세상의 모든 학부모들이 처음엔 다 그랬을 것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수치화된 성적이나 순위 따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1년 과정을 마치면 아이의 학교생활, 발달상황 등을 기술한 통지표를 받게 된다. 나의 부모님은 교과목 별로 기재된 성적과 ‘ 수 우 미 양 가’ 와 같은 평가치, 그리고 반 석차를 보고서 학교생활을 짐작하셨겠지만 결국 성적얘기 뿐이었다. 좋은 성적을 받았으면 훌륭하게 학교생활을 해낸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에 관심을 보였는지, 어떤 배움에 어려움을 보였는지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K의 통지표에는 신체발달 상황, 학교생활, 교과목별 활동내용과 성과, 종합평가가 수록되어 있었다. 부모로서 궁금해 하는 K의 학교생활에 관한 얘기는 학교생활과 종합평가에 담겨져 있었다. 매달 담임선생님과 만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참관할 기회도 있지만 아이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게 된다. 지난 1년의 과정을 통해 아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선생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부모로서 이 조급함과 궁금증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이런 번잡한 마음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발도르프학교 학부모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발도르프교육에 뜻이 있는 부모들을 위해 K의 사생활을 살짝 공개한다. K의 동의없이…

작은 체구에 투명하게 하얀 피부를 가진 K는 1년 사이 많이 자랐습니다. (중략) 환한 표정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K는 가방을 사물함에 정리하는 것보다 교실과 친구들에게 늘 관심이 가 있었습니다. 가방은 사물함 앞에 놓아 둔 채로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나 관심거리들을 나눕니다. 그래서 얘기를 한번 해주면 뭔가 아쉬운 듯이 와 재빨리 가방을 정리합니다. 아침 열기 전 손잡고 인사를 나눌 때 어찌나 마음이 급한지 인사가 끝나자마자 얼른 손을 빼가던 K는 지금은 조금 여유를 가집니다. (중략) 교실 질서와 흐름 속으로 K는 참 천천히 들어왔습니다. 초를 켜고 고요히 아침을 열고 시를 바르게 서서 함께 낭송하는 시간이 K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중략) 2학기에도 그런 K의 모습은 조금 남아있지만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어떤 질서 속에서 흐름을 타고, 경계에 인식을 가지는 것에 아직은 어린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의 흥미와 관심을 친구들에게 표현하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발표를 정말 열정적으로 했습니다. 조용히 손을 들고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발표에 대한 강한 열망을 언제나 표현하는 편이었고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을 때 아쉬움도 자주 표현했습니다. 수업시간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면 자주 표현함으로 흐름이 끊길 때가 있습니다. 그럼 아이들도 그 이야기에 꼬리를 물고 교실이 이야기장이 됩니다. 그럴 때에도 손을 들고 이야기 하도록 지도를 합니다. (중략) 공책 작업을 할 때도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게 아닌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하는 것과 조용히 자기 공책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제 의도 속에서 많이 부자유스러워 했습니다. 리코더를 부는 것을 어려워 했습니다. 손이 작긴 하지만 손가락에 있는 소근육들이 연습이 되면서, 호흡도 차분하게 되면서 리코더 소리를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으로 나가 활동적으로 움직입니다. 나들이나 소풍을 갔을 때도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K는 이제 막 하늘을 날기 시작한 아기새 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아기새가 조금씩 세상을 경험하면서 경계와 질서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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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쓰고 읽습니다

발도르프학교 1학년 한글 에포크 노트

   지난 주말 K는 처음으로 ‘숙제다운 숙제’를 받아왔다. ‘숙제다운 숙제’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내준 과제들처럼 누가봐도 숙제라고 할만한 그런 것들 말이다. 글쓰기, 셈과 같이 방과후에 집에서 해야 했던, 노는 시간을 빼앗아 갔던 그런 숙제들 말이다.
   지금까지 K가 받아온 숙제는 방학때 자연속에서 충분히 놀기, 추석때 아빠한테 노래 가르쳐 주기, 뭐 이런 것들이었다. 여튼, 지난 주말 K가 받아온 숙제는 ‘엄마, 아빠, 동생의 이름을 예쁜 종이에 적어오기’ 였다. 요즘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한글은 기본으로 익혀가야 한단다. 게다가 영어, 산수 정도는 가르쳐 보내야 기죽지 않고 학교생활을 한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현실이다. K는 대안학교에 보낼 생각을 했었고, 대안학교에 보내지 않더라도 한글교육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에 미리 가르치진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와중에 스스로 글자를 깨치는 영특함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지금도 자기전에는 꼭 책을 읽어 줘야만 한다.
   K가 1학기 중에 배운것은 자음이 전부였다. 그림그리듯 자음을 그려보고 ‘ㄱ’, ‘ㄴ’, ‘ㄷ’의 모양이 숨어있는 물건들을 찾아 헤맸다. 의성어들을 통해 자음이 갖는 소리의 특성을 느껴보곤 했다. 2학기 들어서 ‘ㅏ’, ‘ㅜ’, ‘ㅣ’ 같은 모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글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책을 읽거나 길을 가다 아는 글자가 보이면 자랑스레 글자를 읽어 보인다. 또래 아이들이 1년전에 보였을 모습이라 생각하면 살짝 웃음이 난다. 하지만 조급해 지지는 않는다. 그 시기에는 빨리 읽고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발도르프교육의 읽기, 쓰기에 관한 소개글이다.

*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육소위에서 번역한 자료입니다.

Literacy, Not Just Reading

발도르프 학교에서 언제 어떻게 읽기를 가르치는지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우선 발도르프 학교의 전체 교과과정이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발도르프 학교가 영적인 삶을 다시 일깨우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 발도르프 교과과정과 교육이념(pedagogy)이 이 과업을 위한 실용적 도구가 되어 현대 삶 속에 자리한 물질주의의 경직되고 편협한 영향력에 정면으로 맞서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 역점을 둔 것 중 하나가 아이들 안에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 능력을 발달시켜 이를 바탕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목적이 분명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발도르프 교육을 미래를 위해 뿌려진 하나의 씨앗으로 보았던 것이다.

아이에게 평생 신어도 닳지 않는 단단한 강철 신발을 주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근시안적 방법을 쓰면 즉시 어려움에 처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필요라고는 없는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개념들을 제공하고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별 심사숙고도 없이 그저 아이들이 이런 파편화된 정보 조각들을 가지고 나아가 삶과 대면할 수 있으리라 막연히 기대한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은 이해에서 나오고, 이해는 경험에서 나온다. 아이의 발이 커지는 것처럼 경험과 이해, 지식도 살아가는 내내 변화를 거듭하며 자란다. 삶이라는 고된 길을 따라가는 동안 유연하게 발을 감쌀 수 있는 신발이야말로 훌륭한 신발이다. 그리고 신발이 닳아지면 애석하기는 하지만 이제까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옆으로 벗어 놓으면 된다. 반면, 계속 커지지도 안는 신발이 닳지도 않고 벗어 던질 수도 없다면 발은 불구가 되거나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될 뿐이다. 물질주의적인 교육, 정보 제공에 치우치는 교육은 이런 신발과 마찬가지이다. 대신 그러한 교육에서는 발을 다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불구가 되고, 나아가 감정을 사로잡아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사고가 지닌 능력까지도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발도르프 교육이 언어 과목에서 지향하는 목표는, 모든 아이들에게 언어가 지닌 힘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는 것이다. 읽기 교육은 이런 언어 과목에 포함된 필수적인 부분일 뿐이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읽기에 대한 첫경험이 아이 스스로 살아있는 언어를 경험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다른 전통적인 학과목들은 물론이려니와 읽기 역시 가르치지 않는다. 유치원 시기에 아이 스스로 글 읽는 법을 깨우쳤다면 멋지고 훌륭한 일이다. 읽기를 억지로 배우지 못하게 막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가르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혼자 글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의 활동을 모방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임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일은 세상의 자연물들을 경험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차츰 자연과, 그리고 동료인 인간에 대한 깊고 경건한 사랑을 키워 나간다. 활동, 즉 아이들 스스로 하는 활동과 아이들이 기꺼이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어른의 활동이 기본이다. 노래 부르기, 역할놀이, 달리기, 뜀뛰기, 쌓고 허물기, 간단하지만 아주 필수적인 집안일하기,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법 배우기 등이 이 시기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이다. 학과공부는 이후에 초등학교 과정에서 충분히 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서기, 걷기, 말하기와 마찬가지로 읽기도 저마다 자기만의 속도로 배운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시기보다 일찍 서둘러 읽기를 배울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는 정서적으로든, 생리적으로든, 아니면 학업적으로든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때 이른 읽기 교육에 내몰리면서 나타나는 가장 안타까운 징후 중 하나가, 정상적인 능력과 지능을 가진 아이들 가운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과 전자 오락물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자기 속도에 맞추어 편안한 환경에서 배웠더라면 읽기를 잘 배웠을 아이들이 이제는 읽기 자체에 대해 깊은 반감이나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다. 교육을 끌고 가는 정치 세력들은 자기들이 내놓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은 물론 교육과 사회 일반의 미래 행복에 얼마나 해로운 결과를 미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발도르프 교육의 읽기나 다른 과목 수업에는, 수업 방향이나 진도에 대해 엄격하게 시기별로 정해진 목표가 없다. 그런 목표들은 충분히 빨리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오히려 담임교사는 학습 내용이나 반 아이들의 다양한 기질, 성숙 정도, 학습 능력에 따라 폭넓고 유연하게 수업을 진행해 나간다. 시험을 위한 숙련도가 아니라, 상(그림)을 빚어내는 상상력을 키우고 배움 그 자체가 각 아이의 내면에서 살아있는 힘이 되는 그런 환경이 목표이다.

교사가 반 아이들에게 상상력이 넘쳐 나는 상들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제각각 이 상들을 개인적 경험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이런 개인적 경험이, 아이들이 열의를 가지고 건강하게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파편화된” 정보 조각의 산물이 아닌, 진정한 상상력에 기반을 둔 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자신의 개념적 삶 속에서 유연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 삶으로, 삶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교육이야말로 건강한 교육이며, 미래와 그리고 개인의 삶은 물론 인류의 문화·사회적인 삶 전체를 위해 뿌려진 씨앗이 된다.

이제 읽기와 읽기 수업으로 돌아가보자. 상을 빚어내는 발도르프 교육의 특징은 1학년에서 아이들에게 문자를 소개하면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읽기의 첫 수업들은 옛이야기(fairy tales) 속의 원형적인 도덕 이미지들로 시작한다. 마법을 부리는 뱀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뒤 아이들이 뱀 그림을 그린다. 뱀을 그리면서 구불거리는 뱀의 몸짓이 생겨난다. 그리고 나서 교사가 뱀(snake)이란 단어의 첫 글자(s)와 그림 속 뱀의 모습 에서 뱀이 내는 소리[s-]를 찾아 들려준다. 거기에서 비로소 ‘s’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자음의 원형적 소리와 그 현대적 재현 간에 존재하는 다른 상형문자적 관계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오이리트미 교사는, 언어 오이리트미의 원형적 몸짓 속에서 이에 상응하는 언어의 이미지들을 창조해내는 작업을 통해, 담임교사의 작업을 지원하고 심화시킨다. 모든 자음이 일일이 이런 방식으로 제시될 필요는 없다. 아이들 스스로 얼마든지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음은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통해, 모음은 내적인 혼의 몸짓을 통해, 모든 문자들이 제시되고 나면 쓰기 교육을 시작한다.

읽기가 수동적인데 비해 쓰기는 능동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쓰기가 읽기보다 조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사람들은 읽을 수 있게 되기 전에 쓰기부터 해야 했다. 발도르프 교육은 가능한 충실하게 인류의 의식(consciousness)이 발전해 온 과정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발도르프 교육의 읽기 교과과정은 사실상 쓰기 교과과정이며,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쓰기 활동에서 생겨난다. 공책에 그린 표시들이 갑자기 이해되어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오는 그 깨달음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교사가 지어낸 문장들을 옮겨 적어 아름답게 자기만의 책을 만들어 나가는데, 발도르프 교육은 이를 통해 아이들이 그 깨달음의 경험을 준비하도록 하며,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읽기에 친숙해진다.

쓰기를 통해 읽기를 배울 때 아이들은 처음에는 상상을 동원하여 문자를 재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간단한 문장 베껴 쓰기로 나아가고 나중에는 이야기 전체를 베껴 쓴다. 특히 1학년 시기의 목표는 이후 학년들에서 배우게 될 매우 까다로운 언어 교과과정을 뒷받침할 깊고 탄탄한 기초를 다지는 데 있다.

1학년 과정에서 아이들은 매일 시와 이야기를 접하면서 언어를 풍부하게 경험한다. 시는 기억력을 개발시키면서 동시에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훈련시킨다. 옛이야기들은 서사에 대한 감각을 개발시키면서 동시에 심오하고 원형적인 혼의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교사가 직접 지은 글을 칠판에 써놓으면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그대로 베껴 쓴다. 이런 교사의 글 속에는 자기 학급 특유의 요구들을 깊이 다뤄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다른 읽기 학습 교재들과 마찬가지로, 교사가 직접 쓴 글에서도 어휘와 구문이 제한되고 특정한 발음 유형이 강조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쓴 글은, 살아 있으며 특정한 학급과 그 학급의 생생한 순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교과서도 이렇게 적합하게 딱 맞아떨어지기란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종류의 글을 상점에서 산 선물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만든 선물을 받는 것처럼 여긴다.

이미 글을 터득한 채로 입학하는 1학년 아이들에게 과연 발도르프 교육이 어떻게 다가가는지, 그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지,수업을 지루해 하지 않는지 하는 등의 질문들이 자주 제기된다. 아주 좋은 질문들이다. 그에 대한 답은 부모가 발도르프 교육의 목표에 얼마나 열려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만약 부모가 학교를 회의적이거나 적대적으로 여기는 듯한 느낌을 아이가 경험한다면 아이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부모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면 아무리 훌륭한 교사와 함께 한다고 해도 아무런 혜택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상상력이 풍부해지기를 바라고, 이웃이나 친척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빨리 글 읽기를 배우지 않아도 좋다고 확신한다면, 아무리 학습적으로 앞서 나간 아이라 하더라고 발도르프 교육을 즐기고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활동들에서 자양분을 받는다. 이런 활동들이 아이의 혼에 울림을 일으키며 삶에 목표와 유연성을 부여한다. 이런 것들은 양에 연연하는 정보 중심의 교과과정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2학년은 아이들 대부분이 자신이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발견은 가장 놀라운 형태로 일어난다.매일 쓰기 시간에 담임 교사는 그 날의 쓰기 과제를 읽는다. 아이들은 교사의 소리를 듣고 따라 읽는다. 놀랍게도 교사의 소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혼자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난다. 아이는 눈을 아래로 내려 자기 공책에 전날 적어 놓은 쓰기 과제를 보며 스스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로써 삶의 커다란 문지방 하나를 넘은 것이다.

3학년이 되면 자신의 공책과 함께 인쇄된 “진짜” 책을 읽는다. 2학년 때 인쇄된 읽을거리를 도입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담임교사의 몫이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 인쇄된 책을 읽는 것이 읽기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이 된다. 또한3학년은 학생들이 각자의 공책에 각자의 말로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런 독립적인 작업을 2학년 때 처음 시작하기는 하지만, 3학년이 되면 언어 교과과정에서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담임교사가 제시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학생들은 각자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탐색해 나간다. 풍부하게 쓰는 학생들도 있고 신중하게, 혹은 유려하게 쓰는 학생들도 있다.중요한 것은 각자가 이전 학년에서 경험했던 서사와 인물(character), 묘사 등 모든 것들을 자기 안에서 끌어올려 그려낸다는 것이다.

4학년 이상이 되면 교사가 쓴 것을 학생들이 따라 쓰는 일이 매우 적다. 극히 축약된 정보나 양식적인 예시가 필요한 경우에만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을 쓴다. 이제 읽기는 각자의 일과에서 규칙적인 부분이 된다. 집에서 매일 읽기를 하고,말로든 글로든 읽은 책들에 대한 생각을 학급 전체와 지속적으로 나누는 과정이 진행될 수 있다. 작문과 문학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문법을 공부한다. 중등과정이 시작될 무렵이 되면 발도르프 학교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 강해지고, 앞으로 이어질 학년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 그 형식을 탐구하는데 필요한 훌륭한 기초를 가지게 된다.

언어능력과 관련하여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 중요하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떤 학급에서든 단순히 늦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언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TV의 파괴적인 영향력에서부터 생리학적이고 언어심리학적인 장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다루는데 있어 쉬운 해답이란 결코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든 간에 학생 본인과 교사 그리고 부모에게 반드시 필요한 세가지는 인내와 연민,그리고 노력이다. 근심하고 과잉보호하고 질질 끌면서 뒤로 미루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치원에서부터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어떤 종류이든 학습장애의 징후가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많은 유형의 검사 방법들이 있어서 우리가 평가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진단결과들에 대한 평가가 때때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기초능력(basic skill)을 배워야 하는 아이가 분명 있지만, 치유 작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교정(remediation)에 기반한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항상 기억해야 한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이뤄지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술적인 작업들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만 적합한 사치품이 아니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생활이 단지 경제적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교사와 가정이 서로 잘 이해하고 도와서 필요할 때 아이에게 보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발도로프 교육이 주는 모든 선물들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없다면, 학습적으로 조숙한 아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듯이, 학교와 가정 간의 상호관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발도르프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배움은 아이들이 지식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쓴다. 경험으로부터 이해가 생겨나고, 이해에서 사고가 자라난다. 모든 다른 과목들이 그렇듯이 언어 교과과정은, 상상력이 풍부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 각자가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을 대면하는 데 필요한 힘과 신념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시야(vision)과 사고를 키우도록 돕는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기계처럼 프로그램화되는 것에 저항한다. 굳어져 있는 정보는 우리를 무력하게 한다. 우리의 미래, 그럼으로써 우리의 자유까지도 도둑맞고 있음을 느낀다. 반면 발도르프 교육은 이러한 물질주의적인 교육의 반대편에 서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발도르프 교육의 핵심에 인간에 대한 영적인 상이 있으며, 읽고 쓰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교육 행위가 인류 의식의 진화 과정을 담고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푸른숲발도르프학교 설명회

자유를 향한 교육

아이와 부모와 교사가 함께 크는 교육

사회속에서 더불어 사는 교육

우주의 조화를 인식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교육

[ 2012 푸른숲발도르프학교 설명회 및 바자회 ]

○ 일시 : 2012년 9월 23일 (일) 오전 10시 ~ 오후 4시
○ 장소 : 학교 강당 및 운동장
[신·편입학설명회] 오전 10시 ~ 12시까지
[바자회] 12시 ~ 오후 4시까지

1. 행사 참여를 위한 별도의 절차는 없습니다. 당일 참석하시면 됩니다.
2. 학교 주차장이 협소한 관계로 ‘정지리 토마토 주차장(퇴촌면 정지리 155-7)’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주차장과 학교 사이에 셔틀버스를 운행합니다.
* 셔틀 운행시간
오전 : 9시 30분 / 9시 45분 / 10시 / 11시 / 12시
오후 : 12시부터 매정각 정지리 출발, 각 30분에 학교 입구에서 출발

* 문의 : 행정실 031-793-6591 이메일 gforest77@naver.com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348-19

내겐 꿈이 있으니

노래 들어보기

푸른 하늘에 새들이 날개가 있듯이

이 작은 나에겐 꿈이 있어요

꿈이 내겐 날개죠

하늘을 나는꿈

꽃이 되는 꿈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꿈

그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요

내겐 꿈이 있으니

이 노래 <내겐 꿈이 있으니> 는 큰아이 K가 ‘친구야놀자’ 어린이집에서 배웠던 곡이다. 집에 와서 이 노래를 곧잘 부르곤 했는데 처음 이노래를 듣고서 가슴에 북받치는 그 무언가를 느꼈었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에 이런 감흥을 받기는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노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졌을까. 아니면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 졌을까.

인간은 본래 저마다의 삶의 계획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 계획을 실현시켜 줄 능력도 가진 채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이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고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다. 이는 발도르프 교육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대안교육들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세상이 만든 틀, 세상이 정한 우선 순위가 아닌 자기가 부여받은 능력을 발휘하며 사는 것이 ‘인간다움’이고 ‘자유로움’이라는 것이다. 그 ‘자유’가 바로 ‘꿈’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노래에 바로 그 철학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이 노래의 원곡과 만든 이를 찾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래를 만드신 김희동 선생님은 국내 대안교육의 역사와도 같은 분이다. ‘꽃피는 학교’를 설립하고 교사, 교장으로 일해 오셨는데 아이들을 위해 많은 곡들을 남기셨다. 그런데 ‘꽃피는 학교’는 큰 아이 K가 다니는 ‘푸른숲발도르프학교’와 뿌리를 같이 한다. 학교 설립 이후 구성원들 사이에 학교의 철학과 관련하여 이견이 있었던 듯 싶다. 발도르프교육 철학과 교육과정을 그대로 도입하자는 주장과 이를 국내 전통 사상과 결합시켜 나가자는 주장이 대립하다 결국 학교가 갈리게 되었던 것이다. 김희동 선생님도 발도르프교육을 공부하고 지지했던 분이지만 후자를 원하셨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대안학교들이 더 많아졌으니 안타까워 할일 만은 아니다.

김희동 선생님의 노래들을 보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 분의 시선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김희동 선생님이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놀랍고 반가웠을까…

독일에서 본 발도르프학교

최근 독일에 살고 계신 김동수 님이 올려주신 발도르프학교 소개 글입니다. 학부모나, 교사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독일에서 본 발도르프학교

한국에도 발도르프학교가 있다

발도르프학교는 전세계적으로 1000여개가 있습니다. 발도르프유치원은 그보다 많은 2000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의 발도르프학교가 1919년 독일에서 개교하였으니 그 역사가 9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발도르프학교는 10여년 전부터  대안교육으로 출발하였고, 올해 서울, 인천 두곳에 새롭게 학교를 개교하였습니다. 이로써 한국의 발도르프학교는 8곳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발도르프교육을 표방하는 최초의 공립학교가 탄생하였습니다.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공현진 초등학교가 그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도르프 교육이 한때의 유행에 그칠지 아니면 100년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함께 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 교육의 정상화가 더딘 만큼 그 역사도 오래 갈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한국의 발도르프학교가 있는 곳을 소개합니다.

2012년 4월,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가 새롭게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도에 추가하였습니다.

서울에 새로이 개교한 자유정릉발도르프학교, 광주에 문을 연 무등자유발드로프학교를 지도에 추가하였습니다.

나는 왜 발도르프학교를 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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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발도르프학교 목공실에서

우리나라에서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자식에게 일체의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공교육에 비해 높은 학비는 제쳐두고서라도 주변의 편견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편견이라는 것은 진실된 모습이 아닌 제3자가 바라본 왜곡된 상일 것이니 개의치 않아도 좋으리라. 남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시시콜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 관한 것이다. 내가 아이의 앞날을 언제까지 염려해 주어야 할까. 내가 예측하는 앞날이 과연 현실이 될까. 내가 성인이 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해 준들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성인이 되기까지 기본적인 인성과 지식을 갖추게 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추게 한다면 더이상 걱정할 것은 없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현재의 행복을 위해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많은 대안학교 중에서 발도르프학교를 선택하게 된 이유들을 정리해 본다. 10년이 지난 뒤에 나의 생각과 기대치는 어디에 머물러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일상의 톱니바퀴 속에서 허우적댈 때 나의 첫 마음가짐을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

  1.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시키지 않겠다.
  2. 끝없는 경쟁으로 치닫는 지금의 공교육, 인간을 재화로 바라보는 공교육을 반대한다.
  3. ‘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인간이 가진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곧 교육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라는 발도르프 교육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4. 자연을 가까이 하고 인간도 그 일부임을 배웠으면 한다.
  5. 인간의 삶이 충분히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6.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스스로 갈길을 모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7. 대학 진학이 인생의 필수 관문이라 생각치 않는다.
  8. 교육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끝없는 상호작용과 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도 그 과정의 중요한 주체이기에 적극적으로 교육에 동참해야 한다.
  9. 대안적인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학교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10.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살고 싶지 않다.
  11. 그리고…

교육을 예술처럼, 만남도 예술처럼

지금껏 나에게는 4번의 입학식이 있었으나 단 한번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한 순간도 말이다. 6년, 3년, 또 3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입학식의 모습은 매번 비슷했다. 군대 사열식처럼 학생들을 줄을 세워놓고 지루한 행사가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의 입장에 앞서 예행연습까지 해야하니 시간은 몇배로 더디게 가는 듯 했다.

3월 2일, K가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 입학했다.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입학식은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인데 이학교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것이 사실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레임 탓에 아침 일찍 잠을 깨고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학교로 가기위해 45번 국도에 올랐다. 45번 국도는 한강과 함께 흐르는 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곳을 지날 일이 있다면 멋진 경관에 한눈 팔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길은 대형 트럭들과 사이클 동호인들이 자주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학교 앞에 있는 너른골생협 원당리 구판장에 모여 함께 학교로 향할 예정이었다. 구판장은 막 개장하여 시골 구멍가게보다 진열된 상품이 적었다. 썰렁한 공간을 화목난로와 1학년 학부모들의 온기가 채우고 있었다.

10시를 넘기자 부모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길 옆에 들어선 멋진 집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학부모들의 집이다. 학교가 이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토지를 매입하고 정착한 고마운 부모들이라 했다. K는 오르막길을 달음질 치다 주춤하고 뒤를 돌아본다. 매번 자동차로 올랐던 길이라 생소한 모양이었다.

저멀리 학교가 보이는데 그제서야 학생들이 모이고 현수막을 치기 바쁘다. 우리가 너무 빨리 온 것이다. ‘지곤조기’를 뜻하는 수신호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어린 학생들은 계단을 채우고 그 보다 큰 학생들은 길 양쪽을 에워쌌다. 미숙하지만 인간적인 이런 풍경이 밉지 않다. ‘환영합니다’라고 쓰여진 현수막엔 새싹과 산,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4학년 학생들의 작품이라 했다.

드디어 준비가 되었나 보다. 이제 올라오라 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환영하는 노래를 합창했다. 큰 학생들은 리코더로 연주를 해주었다. 신입생들을 계단의 앞쪽에 앉히고 재학생들이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한 선생님의 환영인사와 함께 다른 선생님들이 신입생들 앞에 섰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환영의 뜻으로 노래를 선사했다. 뻐꾸기에 관한 노래였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국에서 오신 선생님도 가장자리에 서서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셨다. 우리말을 거의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셨을까. 어떤 말보다 감동적인 환영인사였다.

재학생들이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입학식이 진행될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K는 동기들과 함께 선생님을 따라 다른 곳으로 갔다. 동생 J는 오빠와 헤어지기 싫다며 울음을 쏟아냈다. 이후로도 J의 난처한 돌발행동은 계속 되었다.

강당으로 들어서자 중앙에는 신입생들을 맞이할 색색의 방석이 원형으로 깔려 있었다. 그 주변을 2학년, 3학년 학생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앉았다. 8학년 학생들은 한켠에서 축하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드디어 새로 온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 보다. 리코더 합주가 시작되고 주인공들이 하나 둘씩 입장했다. 예상하지 못했을 낯선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며 자리를 채운다.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중앙에 놓인 촛불을 켰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8년간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 무게를 선생님은 어찌 받아들였을지 궁금해졌다.

새로 입학하는 동생을 둔 재학생 둘이 동생을 위한 편지를 낭독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신입생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재학생이 그 학생에게 화관을 씌워주고 담임 선생님에게로 인도했다. 선생님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것 처럼 꼭 껴안아 주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포옹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저토록 진하게 껴안아 준 적이 있었던가. 나에겐 어색하기만 한 몸짓이다. 부끄러운 사실이다.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인형극이 그 뒤를 이었다. J는 무척이나 궁금했나 보다. ‘안보여! 안보여!’를 외치며 무대의 앞으로 앞으로 파고 들었다. 결국엔 주인공들의 대열에서 인형극을 관람했다. 인형극은 천사가 날개를 떼어 놓고 이땅으로 내려와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세상 여행이 끝나는 그날 다시 날개를 달고 하늘나라의 천사가 되겠지.

공연이 끝나고 학부모들은 1학년 교실로 옮겨 아이들을 맞이하기로 했다. 한달 만에 찾은 교실의 풍경은 이전보다 포근하고 따사로웠다. 계절 책상, 인형, 그림, 조명, 아이들의 쉼터가 될 작은 천막, 곳곳에서 선생님과 어머님들의 애정이 묻어났다. 신입생들은 자기 이름이 붙은 자리에 앉았다. 책상위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필통이 고운 포장지에 싸여 있고 책상 서랍안에는 선생님이 준비하신 선물이 있었다.

푸른숲발도르프학교 아이들에게 입학식은 어떤 순간으로 기억될까. 기억이 오래가진 않겠지만,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애정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즐겁고 기분좋았던 순간으로 기억해 주리라 믿는다.

발도르프학교에서 교육은 예술과 같아야 한다고 한다. 교육이 선생님과 학생의 만남, 선생님과 부모의 만남, 선배와 후배의 만남이라 한다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예술과 같아야 할 것이다. 벤자민 체리 선생님의 말처럼 말이다.

[1학년 교실의 계절 책상,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