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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으로 날아가리

어린 아이들은 부모와 같은 절대적인 권위안에서 충분히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철학입니다. 또한 아이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실현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발도르프학교에는 8학년 담임과정이 있습니다. 이는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모에게 조차 힘든 그 과정이 선생님에게는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요? 8년을 함께 보낸 선생님이라면 부모와 다를 바가 있을까요?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는 올해 8학년 과정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의 품을 떠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9학년 상급과정으로 진급하게 됩니다.

아이들과 8년을 함께 보낸 담임 선생님은 지난 시간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셨습니다.

“앞니빠진 철부지가 사춘기 청년이 될 때까지 한 담임과 함께 하다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웃음과 울음과 애닳음과 애씀….

실수, 반성, 후회, 기쁨, 행복, 그리고 성장을 겪는지요.”

<2012년 2월의 어느날>

그리고 8년을 함께 살아 온 한 제자는 담임 선생님을 위해 이 시를 받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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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발도르프학교 8학년 김중신

                    날아가리
                                                                       – 김중신 –

날아가리
지금까지
‘지금까지’라고 말하기 바로 전 순간까지는 꿈이었던

꿈이었던
지금,

‘지금’이라고 말하는 이 순간
그 꿈이 새가 되어

그 꿈이 새가 되어
지금부터,

‘지금부터’라 말하는 이 순간부터
바로 그 꿈으로 날아가리

바로 그 꿈으로 날아가리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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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예술처럼, 만남도 예술처럼

지금껏 나에게는 4번의 입학식이 있었으나 단 한번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한 순간도 말이다. 6년, 3년, 또 3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입학식의 모습은 매번 비슷했다. 군대 사열식처럼 학생들을 줄을 세워놓고 지루한 행사가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의 입장에 앞서 예행연습까지 해야하니 시간은 몇배로 더디게 가는 듯 했다.

3월 2일, K가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 입학했다.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입학식은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인데 이학교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것이 사실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레임 탓에 아침 일찍 잠을 깨고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학교로 가기위해 45번 국도에 올랐다. 45번 국도는 한강과 함께 흐르는 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곳을 지날 일이 있다면 멋진 경관에 한눈 팔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길은 대형 트럭들과 사이클 동호인들이 자주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학교 앞에 있는 너른골생협 원당리 구판장에 모여 함께 학교로 향할 예정이었다. 구판장은 막 개장하여 시골 구멍가게보다 진열된 상품이 적었다. 썰렁한 공간을 화목난로와 1학년 학부모들의 온기가 채우고 있었다.

10시를 넘기자 부모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길 옆에 들어선 멋진 집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학부모들의 집이다. 학교가 이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토지를 매입하고 정착한 고마운 부모들이라 했다. K는 오르막길을 달음질 치다 주춤하고 뒤를 돌아본다. 매번 자동차로 올랐던 길이라 생소한 모양이었다.

저멀리 학교가 보이는데 그제서야 학생들이 모이고 현수막을 치기 바쁘다. 우리가 너무 빨리 온 것이다. ‘지곤조기’를 뜻하는 수신호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어린 학생들은 계단을 채우고 그 보다 큰 학생들은 길 양쪽을 에워쌌다. 미숙하지만 인간적인 이런 풍경이 밉지 않다. ‘환영합니다’라고 쓰여진 현수막엔 새싹과 산,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4학년 학생들의 작품이라 했다.

드디어 준비가 되었나 보다. 이제 올라오라 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환영하는 노래를 합창했다. 큰 학생들은 리코더로 연주를 해주었다. 신입생들을 계단의 앞쪽에 앉히고 재학생들이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한 선생님의 환영인사와 함께 다른 선생님들이 신입생들 앞에 섰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환영의 뜻으로 노래를 선사했다. 뻐꾸기에 관한 노래였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국에서 오신 선생님도 가장자리에 서서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셨다. 우리말을 거의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셨을까. 어떤 말보다 감동적인 환영인사였다.

재학생들이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입학식이 진행될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K는 동기들과 함께 선생님을 따라 다른 곳으로 갔다. 동생 J는 오빠와 헤어지기 싫다며 울음을 쏟아냈다. 이후로도 J의 난처한 돌발행동은 계속 되었다.

강당으로 들어서자 중앙에는 신입생들을 맞이할 색색의 방석이 원형으로 깔려 있었다. 그 주변을 2학년, 3학년 학생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앉았다. 8학년 학생들은 한켠에서 축하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드디어 새로 온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 보다. 리코더 합주가 시작되고 주인공들이 하나 둘씩 입장했다. 예상하지 못했을 낯선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며 자리를 채운다.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중앙에 놓인 촛불을 켰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8년간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 무게를 선생님은 어찌 받아들였을지 궁금해졌다.

새로 입학하는 동생을 둔 재학생 둘이 동생을 위한 편지를 낭독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신입생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재학생이 그 학생에게 화관을 씌워주고 담임 선생님에게로 인도했다. 선생님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것 처럼 꼭 껴안아 주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포옹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저토록 진하게 껴안아 준 적이 있었던가. 나에겐 어색하기만 한 몸짓이다. 부끄러운 사실이다.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인형극이 그 뒤를 이었다. J는 무척이나 궁금했나 보다. ‘안보여! 안보여!’를 외치며 무대의 앞으로 앞으로 파고 들었다. 결국엔 주인공들의 대열에서 인형극을 관람했다. 인형극은 천사가 날개를 떼어 놓고 이땅으로 내려와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세상 여행이 끝나는 그날 다시 날개를 달고 하늘나라의 천사가 되겠지.

공연이 끝나고 학부모들은 1학년 교실로 옮겨 아이들을 맞이하기로 했다. 한달 만에 찾은 교실의 풍경은 이전보다 포근하고 따사로웠다. 계절 책상, 인형, 그림, 조명, 아이들의 쉼터가 될 작은 천막, 곳곳에서 선생님과 어머님들의 애정이 묻어났다. 신입생들은 자기 이름이 붙은 자리에 앉았다. 책상위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필통이 고운 포장지에 싸여 있고 책상 서랍안에는 선생님이 준비하신 선물이 있었다.

푸른숲발도르프학교 아이들에게 입학식은 어떤 순간으로 기억될까. 기억이 오래가진 않겠지만,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애정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즐겁고 기분좋았던 순간으로 기억해 주리라 믿는다.

발도르프학교에서 교육은 예술과 같아야 한다고 한다. 교육이 선생님과 학생의 만남, 선생님과 부모의 만남, 선배와 후배의 만남이라 한다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예술과 같아야 할 것이다. 벤자민 체리 선생님의 말처럼 말이다.

[1학년 교실의 계절 책상, 2012]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 입학합니다

큰 아이 K가 안양공동육아어린이집 ‘친구야놀자’를 졸업하고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 입학합니다. 발도르프학교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입학하고 성장해 가는 학교랍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의 학교생활을 이 블로그에 담으려고 합니다. 같은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벤자민 체리 선생님

푸른숲발도르프학교, 벤자민 체리, 최호철 화백

이미지 출처: nicos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