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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한국 인지학 컨퍼런스를 열며

 

2003년부터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지만 꽤 잘사는 국가,

2010년 이후 청소년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로 떠올랐지만

교육열이 제일 높은 국가,

대한민국에 당신은 살고 있습니다.

‘1’ 이라는 멋지고 화려한 숫자 너머에서

아이들은 오늘도 빛을 찾아 헤매이고 있습니다.

 

부와 화려함으로 가득 채워진 사회,

소유와 소비가 지배하는 일상,

바깥으로 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는 정보와 자극의 무게로

아이들은 바로 서 있는 것 조차 힘겨워 합니다.

 

2013년 4월 25일,

‘인지학에서 바라본 사회적 치유’라는 주제로 열릴

<2013년 한국 인지학 컨퍼런스>는

우리 시대의 아픔에 대한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 묻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인지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건강한 어른,

당신을 초대합니다.

 

컨퍼런스 등록하기

 

 

2013 한국 인지학컨퍼런스 포스터

2013 한국 인지학컨퍼런스 포스터

 

 

발도르프학교의 통지표

K가 1학년 과정을 마치고 긴긴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발도르프학교에서 첫 통지표를 받았다. 그런데 부모인 내가 왜 이렇게 설레였을까? 세상의 모든 학부모들이 처음엔 다 그랬을 것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수치화된 성적이나 순위 따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1년 과정을 마치면 아이의 학교생활, 발달상황 등을 기술한 통지표를 받게 된다. 나의 부모님은 교과목 별로 기재된 성적과 ‘ 수 우 미 양 가’ 와 같은 평가치, 그리고 반 석차를 보고서 학교생활을 짐작하셨겠지만 결국 성적얘기 뿐이었다. 좋은 성적을 받았으면 훌륭하게 학교생활을 해낸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에 관심을 보였는지, 어떤 배움에 어려움을 보였는지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K의 통지표에는 신체발달 상황, 학교생활, 교과목별 활동내용과 성과, 종합평가가 수록되어 있었다. 부모로서 궁금해 하는 K의 학교생활에 관한 얘기는 학교생활과 종합평가에 담겨져 있었다. 매달 담임선생님과 만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참관할 기회도 있지만 아이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게 된다. 지난 1년의 과정을 통해 아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선생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부모로서 이 조급함과 궁금증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이런 번잡한 마음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발도르프학교 학부모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발도르프교육에 뜻이 있는 부모들을 위해 K의 사생활을 살짝 공개한다. K의 동의없이…

작은 체구에 투명하게 하얀 피부를 가진 K는 1년 사이 많이 자랐습니다. (중략) 환한 표정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K는 가방을 사물함에 정리하는 것보다 교실과 친구들에게 늘 관심이 가 있었습니다. 가방은 사물함 앞에 놓아 둔 채로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나 관심거리들을 나눕니다. 그래서 얘기를 한번 해주면 뭔가 아쉬운 듯이 와 재빨리 가방을 정리합니다. 아침 열기 전 손잡고 인사를 나눌 때 어찌나 마음이 급한지 인사가 끝나자마자 얼른 손을 빼가던 K는 지금은 조금 여유를 가집니다. (중략) 교실 질서와 흐름 속으로 K는 참 천천히 들어왔습니다. 초를 켜고 고요히 아침을 열고 시를 바르게 서서 함께 낭송하는 시간이 K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중략) 2학기에도 그런 K의 모습은 조금 남아있지만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어떤 질서 속에서 흐름을 타고, 경계에 인식을 가지는 것에 아직은 어린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의 흥미와 관심을 친구들에게 표현하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발표를 정말 열정적으로 했습니다. 조용히 손을 들고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발표에 대한 강한 열망을 언제나 표현하는 편이었고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을 때 아쉬움도 자주 표현했습니다. 수업시간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면 자주 표현함으로 흐름이 끊길 때가 있습니다. 그럼 아이들도 그 이야기에 꼬리를 물고 교실이 이야기장이 됩니다. 그럴 때에도 손을 들고 이야기 하도록 지도를 합니다. (중략) 공책 작업을 할 때도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게 아닌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하는 것과 조용히 자기 공책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제 의도 속에서 많이 부자유스러워 했습니다. 리코더를 부는 것을 어려워 했습니다. 손이 작긴 하지만 손가락에 있는 소근육들이 연습이 되면서, 호흡도 차분하게 되면서 리코더 소리를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으로 나가 활동적으로 움직입니다. 나들이나 소풍을 갔을 때도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K는 이제 막 하늘을 날기 시작한 아기새 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아기새가 조금씩 세상을 경험하면서 경계와 질서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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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공동체, 삶과 죽음에 대하여

광고들어갑니다.

5-   4-   3-   2-   1. 땡!~~~~

‘발도르프’라는 말은 한번씩 들어보셨죠? 발도르프교육은 인지학이라는 정신과학을 바탕으로 100년전에 시작된 교육입니다. 인지학은 ‘인간 본질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학은 인간의 본성과 의식의 진화에 관한 통찰로부터 인간과 우주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발도르프교육, 오이리트미, 인지의학, 유기건축, 생명역동농법, 소셜파이낸스, 캠프힐운동 등이 생겨났습니다. 오는 4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발도르프교사들이 한국에 모여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발도르프 유치원, 학교의 교사들을 위한 교사컨퍼런스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지학컨퍼런스가 개최됩니다.

이에 앞서 인지학과 발도르프교육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공개강좌를 진행합니다. 연사는 미하엘 데부스 선생님입니다.

아래 일정 참고하시어 관심있는 교사, 학부모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월20일(수) ~ 22일(금), 오전 9시30분 ~ 12시

* 장소 : 과천시 과천문화원 관악홀

* 주제 :

  • 20일(수) 발도르프교육과 인지학
  • 21일(목) 학부모의 과제와 학교의 과제 – 학급 공동체는 무엇인가?
  • 22일(금) 나는 왜 세상에 왔을까? –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삶과 죽음에 대하여.

 

 

* 일시 : 2월21일(목) ~ 23일(토)

* 장소 :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 주제 : 인지학의 관점에서 본 미래의 사회

  • 21일(목) 오후 7시 30분~9시 공동체의 의미. 어떻게 공동체가 형성되는가? 공동체가 왜 필요한가?
  • 22일(금) 오후 7시 30분~9시 새로운 세상은 어떻게 오는가? 자유의 인간
  • 23일(토) 오전 10시 30분~11시30분 옛 공동체와 새로운 공동체

+ 공개강좌의 참가비는 매 강의별 만원입니다.

 

* 강사: 미하엘 데부스

– 독일 인지학협회 의장 역임

– 독일 슈투트가르트 자유신학대학 대표교수 역임

– 독일 튀빙엔과 에어랑엔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철학 전공

– 현 그리스도교공동체 독일 뫼링엔교회(Christengemeinschaft)주임사제

 
흔히 교육 선진국을 말할 때, 독일이나 핀란드를 첫번째로 꼽습니다. 핀란드의 교육성과는 세계 최고지만 그 나라의 청소년들도 그리 행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09년 데이타로 핀란드 청소년의 자살율은 우리나라의 두배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가 조금 더 높을 것 같습니다.(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율은 10만명당 13명, OECD국가중 2~3위 수준일 듯)

하지만 독일은 다릅니다. 독일은 두번의 전쟁을 치르고 교육에 대한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발도르프교육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공교육은 발도르프 교육의 시스템과 방법론을 도입합니다. 예를 들어, 남녀공학, 주기집중수업, 서술적인 평가, 학습 부진아를 위한 개별계획, 1학년 부터 시작되는 외국어 수업, 학교 행정조직의 자치운영, 그리고 학부모 참여 등이 그것입니다.

공부 못하는 나라, 독일에 대한 지식채널 보셨나요?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쓰고 읽습니다

발도르프학교 1학년 한글 에포크 노트

   지난 주말 K는 처음으로 ‘숙제다운 숙제’를 받아왔다. ‘숙제다운 숙제’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내준 과제들처럼 누가봐도 숙제라고 할만한 그런 것들 말이다. 글쓰기, 셈과 같이 방과후에 집에서 해야 했던, 노는 시간을 빼앗아 갔던 그런 숙제들 말이다.
   지금까지 K가 받아온 숙제는 방학때 자연속에서 충분히 놀기, 추석때 아빠한테 노래 가르쳐 주기, 뭐 이런 것들이었다. 여튼, 지난 주말 K가 받아온 숙제는 ‘엄마, 아빠, 동생의 이름을 예쁜 종이에 적어오기’ 였다. 요즘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한글은 기본으로 익혀가야 한단다. 게다가 영어, 산수 정도는 가르쳐 보내야 기죽지 않고 학교생활을 한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현실이다. K는 대안학교에 보낼 생각을 했었고, 대안학교에 보내지 않더라도 한글교육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에 미리 가르치진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와중에 스스로 글자를 깨치는 영특함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지금도 자기전에는 꼭 책을 읽어 줘야만 한다.
   K가 1학기 중에 배운것은 자음이 전부였다. 그림그리듯 자음을 그려보고 ‘ㄱ’, ‘ㄴ’, ‘ㄷ’의 모양이 숨어있는 물건들을 찾아 헤맸다. 의성어들을 통해 자음이 갖는 소리의 특성을 느껴보곤 했다. 2학기 들어서 ‘ㅏ’, ‘ㅜ’, ‘ㅣ’ 같은 모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글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책을 읽거나 길을 가다 아는 글자가 보이면 자랑스레 글자를 읽어 보인다. 또래 아이들이 1년전에 보였을 모습이라 생각하면 살짝 웃음이 난다. 하지만 조급해 지지는 않는다. 그 시기에는 빨리 읽고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발도르프교육의 읽기, 쓰기에 관한 소개글이다.

*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육소위에서 번역한 자료입니다.

Literacy, Not Just Reading

발도르프 학교에서 언제 어떻게 읽기를 가르치는지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우선 발도르프 학교의 전체 교과과정이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발도르프 학교가 영적인 삶을 다시 일깨우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 발도르프 교과과정과 교육이념(pedagogy)이 이 과업을 위한 실용적 도구가 되어 현대 삶 속에 자리한 물질주의의 경직되고 편협한 영향력에 정면으로 맞서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 역점을 둔 것 중 하나가 아이들 안에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 능력을 발달시켜 이를 바탕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목적이 분명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발도르프 교육을 미래를 위해 뿌려진 하나의 씨앗으로 보았던 것이다.

아이에게 평생 신어도 닳지 않는 단단한 강철 신발을 주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근시안적 방법을 쓰면 즉시 어려움에 처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필요라고는 없는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개념들을 제공하고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별 심사숙고도 없이 그저 아이들이 이런 파편화된 정보 조각들을 가지고 나아가 삶과 대면할 수 있으리라 막연히 기대한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은 이해에서 나오고, 이해는 경험에서 나온다. 아이의 발이 커지는 것처럼 경험과 이해, 지식도 살아가는 내내 변화를 거듭하며 자란다. 삶이라는 고된 길을 따라가는 동안 유연하게 발을 감쌀 수 있는 신발이야말로 훌륭한 신발이다. 그리고 신발이 닳아지면 애석하기는 하지만 이제까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옆으로 벗어 놓으면 된다. 반면, 계속 커지지도 안는 신발이 닳지도 않고 벗어 던질 수도 없다면 발은 불구가 되거나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될 뿐이다. 물질주의적인 교육, 정보 제공에 치우치는 교육은 이런 신발과 마찬가지이다. 대신 그러한 교육에서는 발을 다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불구가 되고, 나아가 감정을 사로잡아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사고가 지닌 능력까지도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발도르프 교육이 언어 과목에서 지향하는 목표는, 모든 아이들에게 언어가 지닌 힘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는 것이다. 읽기 교육은 이런 언어 과목에 포함된 필수적인 부분일 뿐이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읽기에 대한 첫경험이 아이 스스로 살아있는 언어를 경험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다른 전통적인 학과목들은 물론이려니와 읽기 역시 가르치지 않는다. 유치원 시기에 아이 스스로 글 읽는 법을 깨우쳤다면 멋지고 훌륭한 일이다. 읽기를 억지로 배우지 못하게 막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가르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혼자 글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의 활동을 모방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임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일은 세상의 자연물들을 경험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차츰 자연과, 그리고 동료인 인간에 대한 깊고 경건한 사랑을 키워 나간다. 활동, 즉 아이들 스스로 하는 활동과 아이들이 기꺼이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어른의 활동이 기본이다. 노래 부르기, 역할놀이, 달리기, 뜀뛰기, 쌓고 허물기, 간단하지만 아주 필수적인 집안일하기,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법 배우기 등이 이 시기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이다. 학과공부는 이후에 초등학교 과정에서 충분히 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서기, 걷기, 말하기와 마찬가지로 읽기도 저마다 자기만의 속도로 배운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시기보다 일찍 서둘러 읽기를 배울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는 정서적으로든, 생리적으로든, 아니면 학업적으로든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때 이른 읽기 교육에 내몰리면서 나타나는 가장 안타까운 징후 중 하나가, 정상적인 능력과 지능을 가진 아이들 가운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과 전자 오락물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자기 속도에 맞추어 편안한 환경에서 배웠더라면 읽기를 잘 배웠을 아이들이 이제는 읽기 자체에 대해 깊은 반감이나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다. 교육을 끌고 가는 정치 세력들은 자기들이 내놓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은 물론 교육과 사회 일반의 미래 행복에 얼마나 해로운 결과를 미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발도르프 교육의 읽기나 다른 과목 수업에는, 수업 방향이나 진도에 대해 엄격하게 시기별로 정해진 목표가 없다. 그런 목표들은 충분히 빨리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오히려 담임교사는 학습 내용이나 반 아이들의 다양한 기질, 성숙 정도, 학습 능력에 따라 폭넓고 유연하게 수업을 진행해 나간다. 시험을 위한 숙련도가 아니라, 상(그림)을 빚어내는 상상력을 키우고 배움 그 자체가 각 아이의 내면에서 살아있는 힘이 되는 그런 환경이 목표이다.

교사가 반 아이들에게 상상력이 넘쳐 나는 상들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제각각 이 상들을 개인적 경험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이런 개인적 경험이, 아이들이 열의를 가지고 건강하게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파편화된” 정보 조각의 산물이 아닌, 진정한 상상력에 기반을 둔 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자신의 개념적 삶 속에서 유연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 삶으로, 삶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교육이야말로 건강한 교육이며, 미래와 그리고 개인의 삶은 물론 인류의 문화·사회적인 삶 전체를 위해 뿌려진 씨앗이 된다.

이제 읽기와 읽기 수업으로 돌아가보자. 상을 빚어내는 발도르프 교육의 특징은 1학년에서 아이들에게 문자를 소개하면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읽기의 첫 수업들은 옛이야기(fairy tales) 속의 원형적인 도덕 이미지들로 시작한다. 마법을 부리는 뱀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뒤 아이들이 뱀 그림을 그린다. 뱀을 그리면서 구불거리는 뱀의 몸짓이 생겨난다. 그리고 나서 교사가 뱀(snake)이란 단어의 첫 글자(s)와 그림 속 뱀의 모습 에서 뱀이 내는 소리[s-]를 찾아 들려준다. 거기에서 비로소 ‘s’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자음의 원형적 소리와 그 현대적 재현 간에 존재하는 다른 상형문자적 관계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오이리트미 교사는, 언어 오이리트미의 원형적 몸짓 속에서 이에 상응하는 언어의 이미지들을 창조해내는 작업을 통해, 담임교사의 작업을 지원하고 심화시킨다. 모든 자음이 일일이 이런 방식으로 제시될 필요는 없다. 아이들 스스로 얼마든지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음은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통해, 모음은 내적인 혼의 몸짓을 통해, 모든 문자들이 제시되고 나면 쓰기 교육을 시작한다.

읽기가 수동적인데 비해 쓰기는 능동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쓰기가 읽기보다 조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사람들은 읽을 수 있게 되기 전에 쓰기부터 해야 했다. 발도르프 교육은 가능한 충실하게 인류의 의식(consciousness)이 발전해 온 과정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발도르프 교육의 읽기 교과과정은 사실상 쓰기 교과과정이며,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쓰기 활동에서 생겨난다. 공책에 그린 표시들이 갑자기 이해되어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오는 그 깨달음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교사가 지어낸 문장들을 옮겨 적어 아름답게 자기만의 책을 만들어 나가는데, 발도르프 교육은 이를 통해 아이들이 그 깨달음의 경험을 준비하도록 하며,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읽기에 친숙해진다.

쓰기를 통해 읽기를 배울 때 아이들은 처음에는 상상을 동원하여 문자를 재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간단한 문장 베껴 쓰기로 나아가고 나중에는 이야기 전체를 베껴 쓴다. 특히 1학년 시기의 목표는 이후 학년들에서 배우게 될 매우 까다로운 언어 교과과정을 뒷받침할 깊고 탄탄한 기초를 다지는 데 있다.

1학년 과정에서 아이들은 매일 시와 이야기를 접하면서 언어를 풍부하게 경험한다. 시는 기억력을 개발시키면서 동시에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훈련시킨다. 옛이야기들은 서사에 대한 감각을 개발시키면서 동시에 심오하고 원형적인 혼의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교사가 직접 지은 글을 칠판에 써놓으면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그대로 베껴 쓴다. 이런 교사의 글 속에는 자기 학급 특유의 요구들을 깊이 다뤄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다른 읽기 학습 교재들과 마찬가지로, 교사가 직접 쓴 글에서도 어휘와 구문이 제한되고 특정한 발음 유형이 강조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쓴 글은, 살아 있으며 특정한 학급과 그 학급의 생생한 순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교과서도 이렇게 적합하게 딱 맞아떨어지기란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종류의 글을 상점에서 산 선물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만든 선물을 받는 것처럼 여긴다.

이미 글을 터득한 채로 입학하는 1학년 아이들에게 과연 발도르프 교육이 어떻게 다가가는지, 그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지,수업을 지루해 하지 않는지 하는 등의 질문들이 자주 제기된다. 아주 좋은 질문들이다. 그에 대한 답은 부모가 발도르프 교육의 목표에 얼마나 열려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만약 부모가 학교를 회의적이거나 적대적으로 여기는 듯한 느낌을 아이가 경험한다면 아이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부모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면 아무리 훌륭한 교사와 함께 한다고 해도 아무런 혜택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상상력이 풍부해지기를 바라고, 이웃이나 친척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빨리 글 읽기를 배우지 않아도 좋다고 확신한다면, 아무리 학습적으로 앞서 나간 아이라 하더라고 발도르프 교육을 즐기고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활동들에서 자양분을 받는다. 이런 활동들이 아이의 혼에 울림을 일으키며 삶에 목표와 유연성을 부여한다. 이런 것들은 양에 연연하는 정보 중심의 교과과정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2학년은 아이들 대부분이 자신이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발견은 가장 놀라운 형태로 일어난다.매일 쓰기 시간에 담임 교사는 그 날의 쓰기 과제를 읽는다. 아이들은 교사의 소리를 듣고 따라 읽는다. 놀랍게도 교사의 소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혼자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난다. 아이는 눈을 아래로 내려 자기 공책에 전날 적어 놓은 쓰기 과제를 보며 스스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로써 삶의 커다란 문지방 하나를 넘은 것이다.

3학년이 되면 자신의 공책과 함께 인쇄된 “진짜” 책을 읽는다. 2학년 때 인쇄된 읽을거리를 도입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담임교사의 몫이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 인쇄된 책을 읽는 것이 읽기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이 된다. 또한3학년은 학생들이 각자의 공책에 각자의 말로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런 독립적인 작업을 2학년 때 처음 시작하기는 하지만, 3학년이 되면 언어 교과과정에서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담임교사가 제시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학생들은 각자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탐색해 나간다. 풍부하게 쓰는 학생들도 있고 신중하게, 혹은 유려하게 쓰는 학생들도 있다.중요한 것은 각자가 이전 학년에서 경험했던 서사와 인물(character), 묘사 등 모든 것들을 자기 안에서 끌어올려 그려낸다는 것이다.

4학년 이상이 되면 교사가 쓴 것을 학생들이 따라 쓰는 일이 매우 적다. 극히 축약된 정보나 양식적인 예시가 필요한 경우에만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을 쓴다. 이제 읽기는 각자의 일과에서 규칙적인 부분이 된다. 집에서 매일 읽기를 하고,말로든 글로든 읽은 책들에 대한 생각을 학급 전체와 지속적으로 나누는 과정이 진행될 수 있다. 작문과 문학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문법을 공부한다. 중등과정이 시작될 무렵이 되면 발도르프 학교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 강해지고, 앞으로 이어질 학년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 그 형식을 탐구하는데 필요한 훌륭한 기초를 가지게 된다.

언어능력과 관련하여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 중요하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떤 학급에서든 단순히 늦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언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TV의 파괴적인 영향력에서부터 생리학적이고 언어심리학적인 장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다루는데 있어 쉬운 해답이란 결코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든 간에 학생 본인과 교사 그리고 부모에게 반드시 필요한 세가지는 인내와 연민,그리고 노력이다. 근심하고 과잉보호하고 질질 끌면서 뒤로 미루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치원에서부터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어떤 종류이든 학습장애의 징후가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많은 유형의 검사 방법들이 있어서 우리가 평가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진단결과들에 대한 평가가 때때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기초능력(basic skill)을 배워야 하는 아이가 분명 있지만, 치유 작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교정(remediation)에 기반한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항상 기억해야 한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이뤄지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술적인 작업들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만 적합한 사치품이 아니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생활이 단지 경제적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교사와 가정이 서로 잘 이해하고 도와서 필요할 때 아이에게 보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발도로프 교육이 주는 모든 선물들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없다면, 학습적으로 조숙한 아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듯이, 학교와 가정 간의 상호관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발도르프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배움은 아이들이 지식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쓴다. 경험으로부터 이해가 생겨나고, 이해에서 사고가 자라난다. 모든 다른 과목들이 그렇듯이 언어 교과과정은, 상상력이 풍부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 각자가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을 대면하는 데 필요한 힘과 신념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시야(vision)과 사고를 키우도록 돕는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기계처럼 프로그램화되는 것에 저항한다. 굳어져 있는 정보는 우리를 무력하게 한다. 우리의 미래, 그럼으로써 우리의 자유까지도 도둑맞고 있음을 느낀다. 반면 발도르프 교육은 이러한 물질주의적인 교육의 반대편에 서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발도르프 교육의 핵심에 인간에 대한 영적인 상이 있으며, 읽고 쓰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교육 행위가 인류 의식의 진화 과정을 담고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책 표지 이미지

 

푸른숲발도르프학교 바자회에서 재미있는 책한권을 입수했다. 민들레에서 발간한 책들을 파는 코너가 있었는데 **아빠가 맡고 있었다. 바자회 내내 **아빠가 나를 따라다니는 기분을 느꼈다. 결국 사야만 했으리라. 그 분의 내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민들레에서 발간한 책이니 제도권교육에 대해 비판적일테고 교사, 부모의 성찰을 요구하는 책일 것이라 섣불리 짐작해 보며 그중 제목이 가장 섹시한(?) 책을 골랐다. 다행히 가격도 무척 저렴했다. 존 테일러 개토가 쓴 ‘바보 만들기’다. 부제는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 수록 멍청해 지는가’, 누가 붙였는지 참 멋지다. 한때 잘나가던 광고 카피라이터였다던 작가에게 부제를 요청했더라면 이정도 제목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그 일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교직에 투신한다. 이후 30년간 교직을 지키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교직사회에서 파격적인 행보라 하면 사실 관리자, 제도권, 허위에 대한 저항이라 봐도 좋을 듯 싶다. 조직화된 학교에서 자리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을 위해 투신한다면 충분히 파격적인 행보라 할만 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런 교사에게 세번씩이나 ‘올해의 교사상’을 줬던 것을 보면 그의 행보를 반겼을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 그리고 극소수 관료들의 답답함이 어느정도 였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작가는 시종일관 근대 의무교육의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가 내린 최종 결론은 중앙집권화된 의무교육의 사형선고다. 더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현재 교육제도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데 너무도 잘 성공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절대 폐기하지 못할 것이라 본 것이다. 나아가 제도권 교육의 붕괴를 위해 교육이 시장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경쟁할 것을 주문한다. 극단적인 처방이지만 어찌보면 현실적인 유일한 대안인지도 모르겠다. 세금을 학부모와 학생에게 돌려주고 교육주권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간섭하는 제도권 교육의 폐해는 많은 교육전문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라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을 통해 교육의 피해자인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과거의 상처를 또렷히 회상시켜 준다. 넘치는 위트로 제도권 교육을 옹호하는 저들을 비꼬기도 한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해법은 두가지다. 첫째, 교육을 우리의 삶속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 사회와 괴리된 채 학교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지금의 의무교육이고 아이들을 자기 삶의 이유를 모르는 기계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식민지시대 뉴잉글랜드 지역의 독립교회(조합교회라 해석하는데 어색해서)와 같은 자율적인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이 방식이 사실 신선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발도르프교육 철학을 이미 접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장하는 국가교육의 폐해와 그 해결책은 100여년전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시했던 바와 거의 일치한다. 미국이 문제삼는 의무교육의 뿌리는 프로이센의 교육모델이었다. 독일의 근대교육이 미국으로 수출되고, 미국은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은 한국에 전수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당시 독일 국가교육의 폐해를 보고 독립적인 학교의 설립을 주장했다. 국가의 간섭, 경제로 부터 자유로운 학교, 공동체로 이루어진 학교가 발도르프학교이다. 작가인 존 테일러 개토의 주장을 지지하고 탈학교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다고 한다. 그들은 발도르프교육을 들어보지 못했을까?

분명한 것은 발도르프교육 또는 인지학과 관련된 서적보다 이 책 ‘바보 만들기’의 책장을 넘기기가 더 쉽다. 교육을 아이들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저들을 향해 ‘빅엿’을 날려주니 통쾌하다. 하지만 그 이후엔 공허함이 남지 않을까 싶다.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탈학교, 홈스쿨링, 대안학교, 그 문턱을 넘기가 이 나라에서는 너무 어렵다. 하지만 일단 그 문을 넘어서면 왜 그토록 고민했을까 싶다. 어리석게…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외국어를 어떻게 가르칠까?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외국어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외국어 자체가 다른 세계의 문화이자 그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어 교육에 대한 접근방식도 제도권교육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에 입학하면 기본적으로 2가지의 외국어를 배우게 되는데 배움이라기 보다는 언어생활에 노출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인지학에서는 인간이 가진 감각이 12가지라고 봅니다. 그중 특이한 것은 ‘언어감각’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감각은 10세 전후로 절정을 이루고 점점 퇴화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학이전에는 철저하게 모국어만 익힐 것을 강조합니다. 학교에 입학한 후 다양한 언어에 노출되는 것은 외국어 습득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시기를 지나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며, 각각의 언어가 지니는 고유한 특성을 분별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 발도르프 교사는 외국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푸른숲발도르프학교의 교사였던 신일섭 선생님이 번역하신 글을 공유합니다.

발도르프 교사들을 위한 창의적 외국어 교육방법
A Creative Approach to Foreign Languages for Waldorf Teachers by Rene M. Querido

▷▷▷ 번역: 신일섭

외국어는 발도르프 교과과정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주요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일주일에 세차례에 걸쳐서 두가지의 상반된 외국어에 아이들이 노출되기를 원했습니다.

외국어 학습은 상당부분을,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재능인, 모방을 하면서 배우는 음악적 능력에 의존합니다. 비록 이빨이 자라면서 이 재능들은 점차로 사라지게 되지만,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이 천부적인 재능을 여전히 가장 창조적인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외국어를 잘 하게 될 수 있는가는, 저학년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말로써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외국어에 푹 빠질 수 있나로 상당부분 결정 됩니다.

외국어 수업이 진행되는 45분간은 그 나라에 온 것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모국어는 단 한마디도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수업 시작 때 “Good Morning, Children! How are you today?” 라는 선생님의 인사에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함께 대답하며, 이 대화는 날씨에 관한 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생활 외국어가 끝나면 함께 발음연습을 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한 단어, 두 단어, 혹은 세 단어까지 진행할 수 있으며, 점차로 한 주, 두 주, 그리고,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전체 목록이 형성됩니다. 이 단어들을 함께 합창하거나 개별적으로 연습하면서 3~4분이 지나가게 됩니다. 이어서 아이들은 모두 일어나 율동을 포함한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이 노래들은 재미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노래의 의미가 아니고 혀를 꼬부라트리는 것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아이들은 시 낭송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음악적 분위기가 강조됩니다. 아이들을 위해 재미있게 만들어진 짝짜꿍 스타일의 시가 아니라 위대한 명시가 선택되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도 아이들에게 천재 시인들의 훌륭한 시들이 소개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아이들은 말로써 구전되어 가슴으로 기억한 다양한 여러 위대한 시들을 자기 것으로 축적해 나갑니다. 이것은 커서 어른이 된 후에도 인생에서 소중한 보물로써 이어질 수 있으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해당 언어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발달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시를 다룸에 있어서 따라하기 힘든 발음이나 문법에 촛점이 맞추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전혀 예술적 교육이 아닌 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말로써 전달되는 방법을 통해 그 외국 언어가 주는 분위기로부터 충분한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통역이나 번역도 필요 없습니다. 칠판을 이용한 그림과 생생한 외국어의 말함과 들음을 통해 전반적인 의미는 충분히 전달 될 수 있습니다.

수업 중에 교사로부터 받은 수업 내용을 한국말로 간단히 말해보라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시를 가지고 수업을 할 때, 교사가 사전에 시를 잘 암기하고 있다가 감정을 실어서 열정적으로 암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교사는 한번에 몇 줄씩만 반복해서 암송하며 매 수업 5분에서 10분정도를 보낼 수 있으며, 전체 아이들이 합창으로 암송할 수 있고, 개별적으로도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합니다.

★ 저학년 (The Early Grades)

일학년부터 삼학년까지 쓰기는 없으며 모든 수업은 말로써 이루어집니다. 어떤 외국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학년에서 시 낭송외의 남는 시간의 대부분은, 사계절, 낮과 밤, 돌과 식물 동물과 같은 자연의 모든 것들, 신체의 각 부분, 시간 말하기, 여러 활동이 있는 그 날 하루의 일정 등등을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는 방식으로 채워집니다.

이 내용들은 무언극이나 연기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이 듭니다’, ‘잠에서 깨어납니다’, ‘눈을 뜹니다’, ‘침대에서 나옵니다’, ‘세수합니다’, ‘옷을 입습니다’, ‘가족들과 아침을 먹습니다’ 등등의 내용과 관련하여, “무엇을 먹나요?”, “무엇을 입나요?”, “학교에는 어떻게 가나요?” 등의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사는 여행용 가방을 가져와서 긴 여행을 떠날 때 챙겨야하는 각종 물건들을 풀어놓기도 합니다. 3학년의 집중 수업 시간에 이루어지는 쇼핑하기, 시간 말하기, 그리고, 다른 교육 내용들을 외국어를 가르칠 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외국어 수업의 주된 활동은 말하기, 암송하기, 노래 부르기, 게임하기 등으로 구성되지만,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시점을 잘 포착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포크송을 노래하고 율동이 포함된 여러 노래들도 주된 역할을 합니다.

독일어든 영어든 일어든 모두 다 마찬가지로 가장 아름다운 시들을 고르시기 바랍니다. 7세나 8세 아이들과 같이 어린아이들에게 괴테나 쉴러의 명시를 소개해주는 일은 정말로 큰 기쁨이자 풍부한 양식이 될 것입니다. 위대한 시인들은 언어의 창조자이며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수를 표현합니다.

외국어 수업은 교사가 수업에 상당한 다양성을 부여하고, 동시에 교사가 형성한 틀이 매번 반복되더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도록 해야만 가장 효과적이고, 훌륭한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일어서거나 앉거나, 책상을 옆으로 옮기거나, 원을 만들고 교실 세팅을 다시 한다거나 하다가 다시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충분히 많은 다양성을 만들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언어의 활동적인, 또는 정적인 요소들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덜하지만, 1학년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정확히 표현하거나 똑같이 다시 기억해내지 못하더라도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합니다.

아름답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대충 대충하는 발음은 절대 피하여야 합니다.

★ 중간 학년 (The Middle School)

4,5,6학년이 되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합니다.

서서히 이전 학년에서 배운 시와 이야기, 그리고 대화들을 쓰기 시작하게 됩니다. 중간 학년의 주된 과제는 쓰기를 통하여 읽기를 배우는 것이며, 또한 이전 학년 때 살아있는 언어를 말을 통하여 익힌 살아있는 언어를 받아쓰기나 묻고 답하기를 통해 익히는 것입니다.

이제 서서히 동사(행동 단어)를 시작으로 문법이 소개되어 집니다. 동사의 활용도 리듬있게 암기하면서 배워 나갑니다.

“I am, You are, He is, She is … 짝짝 ….”

박수나 발 구르기 등의 적절한 동작들이 사용됩니다. 언어의 의지가 표현되는 동사로부터 서서히 보다 추상적인 명사(이름 등)로 진행되고 차츰 감성이 표현되는 형용사와 부사로 나아갑니다.

교과서를 사용해서 문법을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수년간에 걸쳐서 가장 단순한 규칙과 연습을 통해서 가장 복잡한 것들도 다루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문법은 모국어를 다 익힌 뒤, 1년 후에 가르치면 됩니다. 교사들간의 협력을 통하여 이러한 부분을 잘 조율할 수 있습니다.

문법은 항상 구두로 이루어지는 말과의 생생한 관계 속에서 수업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문법이 외국어 이해를 위한 틀을 제공할 수 있지만, 너무 조기에, 또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면, 생활 언어와의 관계를 소멸시킬 우려도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이런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되면서 외국어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시와 노래, 발음 연습 등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중간학년에도 계속 이어지며, 인쇄된 책도 소개되어집니다. 4학년 말경에는, 학생들이 칠판이나 자신들이 직접 만든 교과서들을 통해서 유창하면서도 정확하게 읽고 아름답게 글을 쓰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보고 쓰기는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하여 맞춤법이 강화되고, 몇 가지 어려운 문법들에 대해 관심이 집중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가르치는 외국어의 이질적인 부분을 즐겁게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속담이나 관용어구, 그리고, 단어의 어원 등이 사용되면서 수업에 유머와 양념의 역할을 하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공식적인 수업 내용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전설이나 민화(民話)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으며, 5, 6학년 때는 역사적 일화를 이야기 해 주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칠판을 사용하거나 직접 마임(익살극)을 하면서 생생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전달됩니다. 되도록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며,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준 이후, 교사는 아이들이 주요 내용을 이해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로서,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게 되는데, 이때에는 보다 정교한 형태로 단어와 관용적 표현의 주요 포인트를 다루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로,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교사에게 되돌려 이야기 해 주기 시작할 것이며, 교사는 이야기의 첫 구절을 칠판에 써 놓음으로써 진행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야기는 점점 아이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며,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어 집니다. 이 이야기는 문체, 문법, 질문과 답변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으며, 글로 써서 그것을 보고 연기를 하는 짧은 희극의 기초 대사가 될 수 있습니다.

6학년이 지나며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 주는 것의 중요성이 점점 증가되며, 7학년, 8학년, 9학년이 되면서 읽기와 함께 교과과정의 핵심 부분이 됩니다. 외국어 담당 교사는 아이들이 주요 수업 시간에 받는 역사와 지리학을 활용하여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6학년 때의 로마 역사, 중세시대, 7학년 때의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8학년의 프랑스 대 혁명, 9학년의 근대사 등등이 있습니다.

5, 6학년 때부터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우는 외국어가 사용되는 나라의 지리와 친숙해 져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그리고, 수업은 항상 외국어로만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해당 나라의 지리와 친숙해져 있는 상태는, 그 나라의 관습, 사람들, 민화(民話), 그 나라의 고유의상, 음식, 전설, 산업, 자원 등의 구체적인 부분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때 즈음이 바로 아이들에게 프랑스의 치즈, 포도주와 샴페인, 향수 등에 대해 소개해 줄 적절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투리에 대한 몇 가지 예를 선보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스페인어를 가르친다면, 춤, 음악, 성당, 스페인 사람들의 성향과 옷차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생생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주의할 사항은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오디오나 영상 매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며, 이들 매체 대신에 교사는 아이들과 의 살아있는 창의적 관계에 의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고등학년 (High School)

시로 시작해서 짧은 이야기로 이어지고, 나아가, 소설과 연극으로 전개되는 언어의 다양한 문학적 보고는 계속해서 학생들에게 제공될 것입니다.

9학년, 10학년, 11학년, 그리고, 12학년에서는 잘 선정된 문학적 교과 과정이 확립되어야 하지만, 그 이전의 저학년 때부터 잘 확립된 기본적인 말하기, 읽기, 쓰기, 받아쓰기, 그리고, 회화가 없이는 계속적인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고등 과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이 유용할 것입니다.

9학년에서 우리의 젊은 학생들은 그들의 발달 단계에 있어서, 흑 아니면 백의 단계에 있으며, 희극과 비극사이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합니다. 독일 문학에서는 젊은 쉴러와 젊은 괴테로 대변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소개해 줄 수 있습니다. 프랑스 문학에서는 프랑스 대 혁명을 다루거나 빅토르위고, 앙드레 쉐니에르 등이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맞습니다. 알프레드 드 비니, 발작 등의 짧은 이야기들과 빅토르위고의 ‘레미제라블’,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에서 발췌한 글이 제일 유익합니다.

이 9학년에게는 유머를 곁들인 희극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수업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또한, 학생들의 지적능력이 점점 성숙됩에 따라 언어의 구조와 문법을 복습하여 확고하게 정착시켜야 합니다.

10학년 때는 낭만주의가 청소년의 삶에 중심적인 부분을 차지합니다. 교사는 서정주의에서 몇 가지 예를 선택하거나 언어의 역사적 측면을 다룹니다. 학생들은, 생생하게 전달만 된다면, 어원이나 언어의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보다 의식적으로 언어의 특징을 즐기기 시작하게 되며, 교사가 라틴어나 그리스어, 그리고, 기타 다른 언어들로부터 좀 더 유사한 예들을 보여주게 되면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11학년에서는 이제 연극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학생들은 졸업전에 라신, 코르네이유, 몰리에르의 차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대 시대(Le Grand Siecle):루이 14세”를 주요 프로젝트로 삼을 수 있고, ”트루와이(Chretien de troyes)”로부터 짧은 이야기를 빼와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독일 문학에서는 괴괴테와 쉴러의 희극을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단, 파우스트는 12학년까지 미뤄두는 것이 좋습니다. 추가로 볼프락 폰 에센바흐와 다른 독일 음유시인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중요한 수업 내용으로, 내적인 둔함으로 인해 너무나 중요한 질문을 하지 못하는 파시발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11학년 때입니다.

이 11학년 학생들은 음악의 역사에 관해 공부하기도 하는데, 외국어 교사는 이를 외국어 수업에 활용하면서 일반 수업시간의 여러 내용들을 자신의 수업 내용을 만들어 가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당 국가의 위대한 작곡가로의 삶을 다룰 수 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베를리오즈, 쇼팽, 드뷔시, 독일의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등등…
12학년에서는, 특히, 현대 문학이 강조됩니다. 불어를 배우는 아이들은 알베르트 까뮈, 앙투안 생떽쥐페리, 아누이, 이오네스코 등을 다루고, 독어의 경우는 막스 프리쉬, 튀렌마트, 볼프강 보르체르트, 하인리히 벨, 그리고, 기타 여러 문인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특정 분야에 대한 자신들의 연구 조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격려해 줍니다. 어떤 학생들은 특정국가의 정치 상황, 사회적 조건, 정부와 사법 시스템에 대해 말해보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외모를 비교해 가며 심리학적인 특징을 연구 주제로 택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학생들은 어떤 지방의 공예나 산업에 관한 이야기를 발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반 아이들 앞에서 구두(외국어)로 발표되며, 각 학생들은 자신의 발표를 해당 언어로 수필을 만들게 됩니다.

지금까지에서 볼 수 있듯이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다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실용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날 많이 볼 수 있는 단순 기본지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곳으로 향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요?

언어는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므로 아마도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언어는, 또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독특한 정신, 개성, 음악성을 이해할 수 있는 관문이며, 매일 매일의 생활속에서 발생하는 끝없는 자기표현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언어는 유아기의 최초 2년 동안에 모방을 통해 아이의 안에서 탄생합니다. 제일 먼저, 아기는 기고, 걷는 것을 배우고, 손짓 발짓을 통해 모국어를 시작하게 되며, 세 살이 되면, 말을 통해 사고(think)의 희미한 빛이 최초로 반짝이기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사고방식은 우리가 말하는 언어에 의해서 결정되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게 되면, 또 다른 방식의 사고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언어는 각각의 사고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 개념과 단어들은 다른 언어로 번역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이 “J’ai raison (I have reason) : 내가 맞다” 라고 말할 때, 독일 사람은 “Ich have recht : 말 그대로 나는 권리가 있다” 라고 말합니다. 독일 말로 “내가 맞다” 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Weltanschauung”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사람(독일사람)은 전체적인 세계관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 할 것입니다. 영국 사람은 자신의 ‘유머감각’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또는, 삶의 방식’에 자부를 느낍니다.

독일어로 ‘wuber etwas nachdenken – 사고(think) 이후에 관하여’ 라는 말은 단어가 지향하는 방향이 전체를 구성하는 종합적 사고방식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영어의 ‘to think about’는 가능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주제 주위를 도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미묘한 언어별 차이점에서 잠시 벗어나, 보다 상징적인 예를 들면서 많은 부분이 번역을 하는 과정에 상실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tree(나무)’ 라는 영어 단어는 – 특히, 오이리트미(행위예술)로 표현될 때 – 독일어인 ‘baun’ 이나 불어인 ’arbre’와는 매우 다른 식으로 표현됩니다. ‘tree’ 라는 소리의 몸 동작은 줄기를 강조하는 반면, ’baum’ 의 경우는 무성한 나뭇잎을 더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으며, ‘arbre’ 의 경우는 프랑스의 길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바람에 휘청거리는 가느다란 고리버들나무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이 통역시 상실되며, 발도르프 학교에서 외국어를 가르칠 때는 언어의 정수를 재 포착하고자 하는 노력을, 서서히, 그 언어를 잘 구사하는 과정을 통해 기울이게 되며, 이를 통해 다른 나라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다른 사고방식, 삶에 대한 다른 태도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의 노력이 없다면, 많은 매혹적이며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게 되며, 또한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편견의 씨앗을 뿌리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때 배우는 동요와 시들로부터 시작해서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2개의 외국어 수업을 통하여 온갖 마음의 색들을 담을 수 있는 파렛트를 갖게 되며, 이는 인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앞당기는데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2개의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의 외국어는 보다 쉽게 다가오게 될 것이며, 우리의 내적 감수성의 역역은 확대될 것입니다.

각 언어는 오케스트라의 악기와 비교될 수 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지만, 동시에 한계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는 제안을 하거나 암시로 가득차 있고 부분적인 질술로만 이루어진 행간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며, 독일어는 묘사에 뛰어난 장점이 있으므로 철학적 이야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항상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었다가 내포하고 있는 최고의 높이로 솟아오릅니다. 한편, 불어는 훈련된 찌르기로 한번에 관통해 버리는 창과 같이 높은 정확도를 가진 오류 없는 도구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모국어에 대해 보다 세세하게 알게 됩니다. 우리는 말, 산문, 시를 통한 표현에 있어서 모국어의 특별한 능력을 재 발견하게 됩니다. 4학년 때부터 서로 다른 언어 속에 있는 격언과 관용어 표현을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적절한 예제를 통해 조금씩 접하게 되는데,

“Er hat einen Vogel (그는 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 그는 미쳤다는 뜻” (독어)
“Elle a une araignee au plafond (그녀는 천장에 거미를 키우고 있습니다.) ->; 역시 미쳤다는 뜻” (불어)
“She has a bee in her bonnet. (그녀의 모자에는 벌이 있다.) ->; 미쳤다는 뜻 (영어)”

많은 재미있고 유머있는 이야기들이 수업을 통하여 소개됩니다. 또한, 역시 4학년 경에는 아름답게, 그리고, 노래를 부르듯 말하는 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아이들은 바르게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 뿐만아니라 언어의 아름다움과 음악성에 대한 존경심도 배우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 외국어를 배우는데 있어서는 심오한 사회적 관계의 측면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 사회적 연결에 대하여 그 어떤 교사보다도 외국어 교육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던 2명의 초창기 발도르프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콘라드 산트퀼러 박사와 헤르베르트 한 박사님입니다.

콘라드 산트퀼러 박사는 슈트트가르트에 있었던 최초의 발도르프 학교에서 수세기 동안 영어와 불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가장 학생들을 활기차게 격려할 수 있는 교수법을 사용했으며, 수개 언어에 능통했던 그의 지식으로부터 끝없는 예제들을 끌어내서 그의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제자들 중 많은 훌륭한 언어학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약 20여년 전에 파리의 생제르망 거리를 함께 걸으며 콘라드 산트퀼러 박사와 나누었던 긴 대화에 대한 즐거운 추억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불어로 프랑스 음유시인들인 트루바두르와 스콜라철학, 그리고, 고대 불어가 현대 관용어구로 발전되어가는 과정에 관해 의견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카페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누었던 이 활기찬 대화에 이어, 우리는 영어로 세익스피어와 영어의 진화, 현대 미국의 관용어구와 오늘날의 영어 어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독일말로 괴테와 쉴러 그리고 독일어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위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의 대화는 내가 지금까지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고 고무적인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다른 두드러진 언어학자는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와 함께 발도르프 학교의 창시자 중 한명이었던 헤르베르트 한 박사입니다. 그는 12개 국어에 완벽하게 능통하였으며, 말년에 저술한 “Vom Genius Europas”를 통해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 그리고, 독일인들이 그들의 언어와 사람들, 지리적 특성, 그리고, 삶의 방식등의 독특함을 가지고 유럽의 다양성에 기여한 것에 대해 논하였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대 업적은 불행히도 아직 영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저서 뿐만 아니라, 그는 외국어 교육의 실용적인 교수법에 관해 헤아릴 수 없는 조언들을 해 주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도 그에게서 특별한 혜택을 너무나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항상 구두 대화, 암송, 시, 회화 등을 강조하면서 언어의 계량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인지하는데 있어서 귀의 훈련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괴테를 배우면서, 우리는,

“금보다 찬란한 것은 무엇인가?”

“빛”

“빛보다 상쾌한 것은 무엇인가?”

“대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

첫 아이를 갖기 직전으로 돌아간다면…

애 키우기 참 힘듭니다. 그런데 애를 키워보지 않고 어른이 된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캐나다 홀튼 발도르프학교의 한 엄마가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첫 아이를 가지기 직전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당신은 실수를 할꺼야.

다른 엄마들을 만나봐.

진짜 남자는 기저귀를 갈줄 안다.

우리 엄마는 옳았어.

딸아이는 당신의 눈을 갖게 될거야.

할머니가 아이를 오염시켜도 내버려 둬.

구글은 애가 없어.

‘불’완전함은 ‘새로운’ 완전함이야.

내겐 꿈이 있으니

노래 들어보기

푸른 하늘에 새들이 날개가 있듯이

이 작은 나에겐 꿈이 있어요

꿈이 내겐 날개죠

하늘을 나는꿈

꽃이 되는 꿈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꿈

그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요

내겐 꿈이 있으니

이 노래 <내겐 꿈이 있으니> 는 큰아이 K가 ‘친구야놀자’ 어린이집에서 배웠던 곡이다. 집에 와서 이 노래를 곧잘 부르곤 했는데 처음 이노래를 듣고서 가슴에 북받치는 그 무언가를 느꼈었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에 이런 감흥을 받기는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노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졌을까. 아니면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 졌을까.

인간은 본래 저마다의 삶의 계획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 계획을 실현시켜 줄 능력도 가진 채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이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고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다. 이는 발도르프 교육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대안교육들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세상이 만든 틀, 세상이 정한 우선 순위가 아닌 자기가 부여받은 능력을 발휘하며 사는 것이 ‘인간다움’이고 ‘자유로움’이라는 것이다. 그 ‘자유’가 바로 ‘꿈’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노래에 바로 그 철학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이 노래의 원곡과 만든 이를 찾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래를 만드신 김희동 선생님은 국내 대안교육의 역사와도 같은 분이다. ‘꽃피는 학교’를 설립하고 교사, 교장으로 일해 오셨는데 아이들을 위해 많은 곡들을 남기셨다. 그런데 ‘꽃피는 학교’는 큰 아이 K가 다니는 ‘푸른숲발도르프학교’와 뿌리를 같이 한다. 학교 설립 이후 구성원들 사이에 학교의 철학과 관련하여 이견이 있었던 듯 싶다. 발도르프교육 철학과 교육과정을 그대로 도입하자는 주장과 이를 국내 전통 사상과 결합시켜 나가자는 주장이 대립하다 결국 학교가 갈리게 되었던 것이다. 김희동 선생님도 발도르프교육을 공부하고 지지했던 분이지만 후자를 원하셨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대안학교들이 더 많아졌으니 안타까워 할일 만은 아니다.

김희동 선생님의 노래들을 보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 분의 시선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김희동 선생님이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놀랍고 반가웠을까…

발도르프학교 1학년 K의 하루 나기

교실 한켠에 촛대를 마련합니다. 그 주변에 원을 그리며 의자를 놓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의자에 앉고 서로를 살핍니다. 오늘은 누가 촛불에 불을 붙이게 될까. 모두가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지만 선생님은 의기소침하거나 혹은 기운이 넘치는 아이를 고릅니다. 촛불과 함께 아이들의 눈과 마음이 환하게 열립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하나되어 아침을 여는 시를 낭송합니다.

Morning has come ~

Night is Away ~

Rise with the sun and welcome the day ~ ♪

첫 시간은 에포크 수업입니다. 정해진 수업시간은 40분이나 에포크수업은 100분간 진행이 됩니다. 정신이 가장 맑은 시간이라 1학년 아이들이지만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요즘 K가 에포크수업시간에 배우는 것은 ‘ㄷ’, ‘ㄹ’, ‘ㅁ’, ‘ㅂ’, ‘ㅍ’ 과 같은 한글 자음과 숫자입니다.

에포크 수업시간이 끝나면 25분간의 쉬는 시간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싸주신 과일, 채소, 견과류로 간식시간을 갖습니다. 밖으로 나가 뛰어놀고 싶은 마음에 간식먹는 시간이 매우 바쁩니다. 간식을 먹고 나면 자유시간. 운동장과 산을 오가며 놀기에 10여분의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두번째 시간은 외국어나 수공예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푸른숲발도르프학교에서는 중국어와 영어를 배웁니다. 상급학년에서는 일본어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외국어를 모국어와 동일한 방식으로 습득하도록 도웁니다. 선생님은 우리말을 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에 선생님의 눈짓, 손짓, 몸짓에 더 집중합니다. 1학년 학생들에게 외국어 수업은 놀이에 더 가깝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놀며 노래부르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마지막 시간은 미술, 음악과 같은 예술수업입니다. 1학년 미술시간에는 습식수채화를 배웁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색깔이 주는 느낌대로 아이들은 반응합니다. K는 이 수업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늘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K는 습식수채화 수업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집중을 백개는 해야 해.”

지난 주 5음계 리코더를 받았습니다. 3학년 형, 누나들이 사용하던 리코더를 물려 받았습니다. 3학년은 7음계 리코더로 배우게 됩니다. K는 리코더에 대해 많은 애착을 보입니다. 학교에서 쓰는 것, 집에서 쓰는 것, 두개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리코더를 배우고 난 이후에도 그 마음 변치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수업이 끝나고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식사전후 꼭 감사기도를 합니다.

“땅은 곡식을 자라게 하고
해는 그것을 익게 하니
사랑하는 햇님 사랑하는 땅님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점심을 먹고 자유시간. 자유시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거나 방과후 놀이활동에 참여합니다. 1학년 학생들은 가능하면 집에서 쉬게 할 것을 권장합니다. 8살 아이들에게는 집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엄마의 애정을 느끼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8시 30분, 밤이 찾아오면 K는 잠자리에 듭니다.

아침을 여는 시

– 루돌프 슈타이너 –

해에서 나오는 사랑의 빛이

나에게 하루를 밝혀 줍니다.

영혼에 들어있는 신의 힘이

내 팔다리에 힘을 줍니다.

빛나는 햇빛 속에 있는 신이여.

당신을 우러러봅니다.

당신이 내 영혼에

자비롭게 심어준

사람의 힘으로

나는 잘 배울 수 있고

또 많은 것을 알고자 합니다.

당신한테서 빛과 힘이 나왔고

당신한테로 사랑과 감사가 흘러갑니다.

푸른숲발도르프학교 학년별 시간표

한국에도 발도르프학교가 있다

발도르프학교는 전세계적으로 1000여개가 있습니다. 발도르프유치원은 그보다 많은 2000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의 발도르프학교가 1919년 독일에서 개교하였으니 그 역사가 9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발도르프학교는 10여년 전부터  대안교육으로 출발하였고, 올해 서울, 인천 두곳에 새롭게 학교를 개교하였습니다. 이로써 한국의 발도르프학교는 8곳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발도르프교육을 표방하는 최초의 공립학교가 탄생하였습니다.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공현진 초등학교가 그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도르프 교육이 한때의 유행에 그칠지 아니면 100년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함께 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 교육의 정상화가 더딘 만큼 그 역사도 오래 갈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한국의 발도르프학교가 있는 곳을 소개합니다.

2012년 4월,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가 새롭게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도에 추가하였습니다.

서울에 새로이 개교한 자유정릉발도르프학교, 광주에 문을 연 무등자유발드로프학교를 지도에 추가하였습니다.